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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64. 살인의 심리학>

by leeesssong 2020. 6. 5.


ㅇ 서론

 

ㅡ 이 책은 전투 중 살해라는 이전까지 금기시되어 온 살해라는 주제를

낱낱이 해부하여 아래의 내용을 이해시키는데 있다.

 

1) 인간은 선천적으로 같은종을 살해하는데 강력한 거부감을 느낀다는 사실과

수 세기에 걸쳐 이러한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가 개발해온 심리적 메커니즘.

2)  전쟁에서 잔학 행위의 기능과 잔학 행위를 저지른 군대가 얻게 되는 역량의 강화와

이로 인해 빠지게 되는 함정의 매커니즘

3) 군인들이 살해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적용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현대 전투 훈련의 기술들.

 

ㅡ 살해라는 주제는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다루게 될 몇몇 주제나 분야는 혐오감과 불쾌감을 일으킬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그것이 지닌 공포의 요소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은 헛된 일이고, 나아가 더 큰 이익에도 반하는 일이다"

 

ㅡ 우리는 어느때보다도 혐오감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고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사람들이 왜 싸우고 죽이는지를 말이다. 과거에 우리는 이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왜 싸우지 않고 죽이기를 거부하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인간의 행동의 이 궁극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을 이해해야,

우리는 인류 문명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방식 속에서 그것에 영향을 미칠 희망을 품을 수 있다.


ㅇ본론

 

제1부. 살해와 거부감의 존재 - 성행위를 연구하는 처녀들의 세계

 

ㅡ "섹스하고 똑같아, 진짜로 해본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거든"

전투 중 살해에 대한 연구는 성관계에 대한 연구와 아주 흡사하다. 살해는 엄청나게 강렬한 사적이고 은밀한 사건이다.

 

ㅡ 제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군 소총수들 가운데 15~20%만 적군에게 총을 쐈을 것이라는 결과.

일본군이 반복해서 만세 돌격을 감행할떄 조차 적군을 향해 자신들이 지닌 무기를 발사하려 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을 죽이는데 아주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 거부감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전장의 병사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ㅡ 듀피크의 연구는 전쟁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최초의 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1860년대에 프랑스 장교들에게 질문지를 배부했다.

답변 중 한 장교는 "많은 병사들이 원거리에서 허공에 대고 총을 쐈다" 고 솔직하게 진술했다.

또 다른 장교는 "우리편 병사들의 상당수가 겨낭도 하지 않은 채 허공에 대고 총을 쐈으며,

그들은 이 급박한 순간에 총쏘기에 취해 모든 걸 잊어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ㅡ 나폴레옹 시대나 남북 전쟁시대에 통상적으로 1분에 한두명의 병사밖에 맞히지 못했다.

이러한 총격전은 지칠때까지 혹은 어두워져 더이상 싸울때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다.

사상자가 많았던 이유는 전투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이지

총격 자체가 특별히 치명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ㅡ 하버드의 노크 교수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벌인 전쟁은 미식축구보다 조금 더 위험했을 뿐이다."라고 한다.

듀피크는 알렉산더 대왕이 무수한 정복 전쟁을 치르면서 잃은 병사들 가운데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은 700여명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전투 이후에 적군이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을때 일어난 일이었다.

역사적으로 전투 손실의 대부분은 양편 가운데 한편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에

상대편을 추격하는 와중에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ㅡ 이처럼 거짓으로 싸우는 척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사실은,

그리고 논란의 여지 없이 명백한 사실은 전투에 참여한 군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심지어 적의 머리 위로 총을 쏘는 것조차 거부한다는 것이다.

 

ㅡ 파블로프적인 의미에서의 조건형성이라는 말이 훈련이라는 말보다 더 적합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반 병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전투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완전히 자동적으로 자기 소총을 장전하고 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형성은 "정확한 수행여부에 늘 따라붙는 상벌"과 짝을 이룬

말그대로 수천시간 동안의 반복훈련을 통해 달성된다.

 

ㅡ 수천명의 군인들이 총을 쏘지 않고 단지 쏘는척만 함으로써

적군이나 지휘관에게 수동적으로 복종하려 했다는 증거들이 존재한다.

 

ㅡ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에서부터 오늘날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사상자의 대부분을 살상한 것은 보병이 아니라 포병이었다.

 

ㅡ 2차 대전 당시 공중전에서 전 전투기 조종사들 가운데

1%도 안되는 소수가 30~40%에 이르는 적기를 격추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적기를 한대도 격추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격추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전투기나 폭격기를 모는 조종사들은 자기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다른 조종사들과 싸우는 끔찍한 딜레마에 직면했고,

이는 그들의 임무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었다.

 

ㅡ 영웅과 영광의 이야기들만이 기록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 영역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는,

전투는 성관계가 그러하듯이 기대와 신화라는 짐을 잔뜩 지고 때문이다.

 

"장병들이 총을 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강의나 토론에 참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탈리아의 전시 보병학교 과정에서부터 지휘 및 참모대학을 포함해

다양한 정규 군사교육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육군>지나 다른 군대 출판물에서도 이 주제를 다룬 글을 본 적도 없다.

메이터 대령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침묵의 공모가 있는 것 같다."


제2부. 살해와 전투 트라우마 - 살해가 정신적 사상자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

 

ㅡ "미군이 참전한 20세기의 모든 전쟁에서 적의 포화로 전사할 가능성보다

정신적 사상자(Psychiatric casualty)가 될 가능성, 즉 군생활의 스트레스로 상당한 기간 동안

심신의 쇠약을 겪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게이브리얼은 말한다.

 

<더 이상 영웅은 없다> 책에서 게이브리얼은 전투 투입기간 10~25일 사이가 최상의 효율을 발휘하는 시기이고,

30일이 지나고부터 전투피로로 인해 과잉반응, 정서적 피로를 거쳐 무력화 단계로 접어든다고 말한다.

이러한 증상에는 극도의 피로와 혼돈 상태, 전환 히스테리, 불안상태, 강박상태, 성격 장애등이 포함된다.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후송과 휴식이다.

 

간저 증후군(Ganzer Syndrome)은 군인이 농담을 하며 어리석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면서 공포를 떨쳐내려 애쓴다고 한다.

 

전환 히스테리

전쟁 중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고, 사건이 일어나고 몇년이 지나고 나서 발생할수도 있다.

전환 히스테리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모습이나,

명백한 위험을 경시한 채 전장에서 목적없이 떠돌아 다니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팔에 수축성 마비 증상이 오는 경우가 꽤 흔했고, 주로 방아쇠를 당기는 팔에 마비가 왔다고 지적한다.

가벼운 부상을 입거나 근접 폭격으로 큰 충격을 받은 군인들에게

히스테리가 찾아올 수 있고, 병원이나 후방으로 이송된 군인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

전쟁의 공포로부터 탈출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정신에서 발생하는 증상이다.

 

불안 상태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수면이나 휴식으로 완화될 수 없고 주의 집중능력을 떨어뜨린다.

잠을 자게 되더라도 끔찍한 악몽을 꾸고 깨어날 때가 많다.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강박 관념에 빠지면서 자신이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이나 자신이 겁쟁이라는 사실을

부대원들이 알게 될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힉 된다.

불안은 대개 가쁜 숨, 쇠약, 통증, 흐릿한 시야, 현기증, 혈관 신경계통의 문제, 기절 등과 동반된다.

 

강박 상태

이 상태는 전환 히스테리는 유사하다.

이 경우 군인은 자기 증상의 병적인 측면을 인식하고 있고,

이것이 자신의 두려움에서부터 파생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떨림과 두근거림, 말더듬, 틱 등의 증세를 통제하지 못한다.

 

성격장애

특정 행동이나 사물에 고착되는 강박적 성향, 급한 성미, 우울, 불안 등이 동반되며

자신의 안전에 큰 위협을 가하는 편집 성향, 과도한 민감성과 고립으로 이어지는

분열성 성향, 분노 폭발이 동반되는 간질 발작적 성향, 심하게 극적인 종교적 성향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신병적 성격으로 악화되는 단계가 포함되어 있다.

 

ㅡ 전투 스트레스에서 발현된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군인을 전장에서 철수시키는 것이다.

 

후송 증후군(evacuation syndrome)은 전투 정신의학이 낳은 역설이다.

국가는 전투 중에 정신적 사상자가 된 자들을 돌봐야 한다.

당장 전장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전투 스트레스에서 회복되고 나면

이들을 전투 경험을 가진 쓸모있는 보충병으로 다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인들이 제정신이 아닌 군인들이 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

정신적 사상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분명한 방법은 군인들이 전투에서 벗어나

주기적으로 쉬면서 원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순환근무를 시키는 것이다.

 

ㅡ 근접성(전방치료)과 기대는 후송 증후군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원칙들이다.

1) 가능한 최전방에서, 때로는 적 포병대의 사정거리 안에 들 정도로 전장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정신적 사상자들을 치료한다.

2) 군부 지도자들과 의료진은 정신적 사상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그들이 한시 바삐 전선에 복귀해 동료들과 함께하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 2가지 요인은 정신적 사상자들이 현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치료책인 긴급히 요구되는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도 정신적 사상자가 된다 해도

전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아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동료 병사들에게 전달한다.

 

ㅡ 이스라엘의 군 심리학자인 벤 셜리트는 전투를 막 치른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무엇이 제일 두려웠냐고 물었다.

그는 "목숨을 잃는 것" 혹은 "전장에서 다치거나 버려지는 것"이라는 대답이 나오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죽거나 다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 많이 표현했다.

셜리트는 전투 경험이 없는 스웨덴 평화유지군에게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그는 기대했던 대로 죽음과 부상이 전투에서 가장 큰 두려운 요인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그는 전투경험이 죽음이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줄인다고 결론 지었다.

 

ㅡ 죽음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전투 중에 정신적 사상자가 발생하는 유일한 원인이 아니며,

심지어는 주된 원인도 아니다.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끔찍하다.

전투 중에 군인들이 정신적 사상자가 되는 데는 이보다 더 깊은 밑바닥에 깔려있는 이유들이 있다.

적대적인 대치 상황에 대한 거부감 역시 전장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지배는 군인의 딜레마에 기여하는 한 요인일 뿐이다.

피로와 증오, 공포가 뒤섞인 두려움,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면서도 살해를 해야한다는

도저히 타협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임무를 부여받은 가운데,

군인은 죄책감과 공포의 진창 속으로 깊이 빠져들다가 결국 정신 이상자가 되고 만다.

 

ㅡ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영국에 맹폭격을 벌인 결과 나타난 학살과 파괴,

죽음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최전방의 군인들이 직면했던 것 만큼이나 지독했다.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의 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집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친구나 친척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여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한다.

놀랍게도 민간인들의 정신적 사상자 발생률은 평시와 아주 유사했다.

 

ㅡ 왜 수병들은 지상에 있는 병사들과 똑같은 정신적 질환을 앓지 않는 것일까?

해답은 이들 대부분이 누군가를 직접 죽이지 않아도 되며,

그 누구도 특정인물을 개인적으로 대면한 상태에서 죽이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그들과 적 사이에는 거리와 기계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현상은 공중전에서도 일어났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조종사들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항공기 안에서 적군 조종사를 볼 수 있었고,

따라서 많은 조종사들이 공격적으로 싸우지 못했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가한 조종사들은

적을 단지 레이더 화면으로 봤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겪지 않았다.

 

ㅡ "군인의 첫번째 자질은 지속적으로 피로와 고충을 견디는 것이다. 용기는 2차적일 뿐이다.

결핍과 박탈, 갈망은 좋은 군인을 만들어 낸다." 나폴레옹

 

전투피로

 

1) 생리적 피로

전투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의 생리적 반응 강도를 이해하려면

우선 교감 신경계에 의한 자원 동원을 이해해야 하고,

그 후에 신체의 부교감 신경계의 반발반응의 영향력을 알아야 한다.

교감 신경계는 신체의 에너지 자원을 동원하고 활동을 지시한다.

부교감 신경계는 신체의 소화 및 회복 과정을 담당한다.

 

평소에는 2체계간의 신체 자원 요구량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싸움-도주 반응이 끼어 들어와 교감 신경계가 생존을 위해 가용한 모든 에너지를 동원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투에서는 소화, 배뇨조절, 괄약근 조절 같은 부차적인 활동이 완전히 차단되는 결과가 일어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성 설사, 바지에 오줌이나 똥을 싸게 만든다.

부교감 신경계의 요구가 되돌아올때도 강력한 반발을 부담해야 한다.

위험과 흥분이 끝나마자 발생하며 대단히 강력한 탈진과 졸음의 형태로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팔팔한 예비대를 유지하는 것은 전투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느 편이 더 오랫동안 버티고 예비대를 마지막 순간에 전개하느냐가 전투의 향방을 갈랐다.

클라우제비츠는 예비대는 항상 전투현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계속 전투를 치르게 되면 군인은 끝나지 않을 듯한 아드레날린의 물결과 이어지는 반발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위험에 대한 신체의 자연적이고 유용하고 적절한 반응은 극도로 비생산적이 되어간다.

에너지 동원능력을 빠르게 소진하여 신체적 정서적으로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의 군인은 신경 피로로 무너지는 것이 불가피하고, 신체는 쇠진된다.

 

2) 수면결핍

강도높은 훈련을 받는 가운데 수면 결핍 떄문에 체험하게 되는 환각과 좀비상태.

실제 전투에서는 더 심각한 형태로 나타난다.

1944년 이탈리아에 배치된 미군 가운데 31%는 하루 평균 4시간 이하를 잤고,

그외 54% 미군이 하루 평균 6시간 이하를 잤다.

 

3) 식량 부족

차갑고 질 낮은 음식을 섭취하는데서 오는 영양부족과 피로로 인한 식욕상실은

전투 효율을 매우 낮게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4) 자연력의 영향

끝없는 추위와 비, 열기, 고통은 군인의 당연한 팔자소관이었다.

어둠에 의한 감각상실, 추위와 비가 가세하면 겪어보지 않은 자들은 절대로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열기 또한 병사들을 지치게 하고 죽게 만들 수 있다.

쥐와 이, 모기 그리고 기타 여러 자연적 요소들이 돌아가며 군인들에게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가하지만

이 모든 자연의 적들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적은 아마 질병일 것이다.

 

이런 반응 작용들에서 오는 정서적 피로가 서로 결합해서 군인들에게 피로를 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ㅡ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과 상해의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동료 인간이 저지르는 파괴와 지배의 행동이다.

 

ㅡ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적의 행동에 대해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큰 충격을 받거나 놀라거나 분노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참전경험이 있는 부대의 임무 수행은 의외로 좋지 않았던 반면

참전 경험이 없는 부대의 임무수행은 좋은 결과를 낳았다.

이 경우는 정서적 피로와 의지의 우물이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임무수행에 크나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다.

 

ㅡ "누군가를 죽여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황이 가라앉은 뒤에 나는 내가 죽인 독일군 병사를 보러 갔다.

가정을 꾸릴 만한 나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

1차 대전 영국군 참전용사, 첫 살해 직후

 

ㅡ "그때는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사람들을 학살했다. 내가 그들을 살해했다."

- 2차대전 독일군 참전용사

 

ㅡ "나는 얼어붙어버렸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다가 느닷없이 완전히 돌아서서 내게 자동화기를 겨누었다.

나는 깜짝 놀라 20발의 총알을 퍼부었고, 아이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무기를 떨어뜨리고 절규했다."

- 베트남전 참전 미 특수부대 장교

 

ㅡ "나는 다시 총을 쐈고 어쩌다 그의 머리를 마줬다. 피가 흥건하게 쏟아졌고.. 나는 토했다.

나머지 부대원들이 올때까지 말이다."

- 이스라엘 6일전쟁 참전용사

 

ㅡ 군인들을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게 만드는 것은 이데올로기나 증오, 두려움이 아니라

아래와 같다는 것이 수많은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1) 동료들에 대한 존중

2) 지휘관에 대한 존경

3) 동료들과 지휘관이 가지게 될 평판에 대한 염려

4)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성공에 공헌하려는 욕구 등을 포함한 집단 압력의 작용


제3부. 살해와 물리적 거리 - 당신도 멀리서는 친구로 보이지 않는다.

 

ㅡ 거리가 가까울수록 살해하기 어렵고 트라우마 크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폭격과 포격, 장거리 살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을 설명하는데 자주 이용된다.

그 반대편은 살해에 대한 거부감이 최고조에 달하는데,

총검으로 찔러 죽일 정도가 되거나 목을 조른다거나 엄지로 눈을 후벼파서 뇌를 짓누르는 등의

일반적 전투기법을 통한 맨손 살인은 거의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는 척도의 가장 극단에서 섹스와 살해가 뒤섞이는 무시무시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ㅡ 우리는 정서적으로 바빌론, 아우슈비츠, 미라이의 학살자들을 떠올리면서 혐오감을 느낀다.

이들을 끝까지 찾아다니며 살해를 저지른 범죄자로 기소한다.

하지만 함부르크나 히로시마를 폭격한 자들을 생각할때, 대다수는 그러한 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지 못한다.

적어도 나치의 사형 집행인들에 대해 느끼는 만큼의 혐오감은 갖지 못한다.

 

ㅡ 영국과 독일에 가해진 전략 폭격에서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 폭격 상황을 경험했다는 이유로

장기간에 걸쳐 정서적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람은 거의 없었던 반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그리고 전장의 많은 군인들은, 정서적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았다.

 

ㅡ 차이는 무엇인가? 결국 거리다.

 

ㅡ 포병, 폭격기 승무원, 해군 함포사수, 미사일 발사반원 등은 죄책감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이는 집단 면죄외 기계적 거리, 그리고 지금 다루고 있는 요소인 물리적 거리라는

3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을 죽이지 않으려고 저항했던 개인의 사례를 단 한건도 찾을 수 없었고,

이러한 유형의 살해와 관련된 정신적 트라우마에 관한 사례도 전혀 찾지 못했다.

 

ㅡ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이 엄마를 부르때가 많다.

 

ㅡ 존키건의 <전쟁의 얼굴>은 아쟁쿠르, 워털루, 솜 등 세 전투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

500년의 세월에 걸쳐 있는 세 전투의 분석에서, 키건은 워털루와 솜에서 대규모 착검 공격을 하는 동안

총검으로 인한 부상은 놀랍게도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지적한다.

칼과 창에 찔려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 부상자들이 다수 있었고, 총검에 찔려 부상당한 자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입은 부상은 보통 이미 싸울 능력을 상실한 후에 입게 된 것들이었다.

따라서 워털루에서 양편 군대가 총검을 들고 서로 싸웠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1차대전 솜전투에서 칼날이 있는 무기에 당한 자들은 전체 부상자들 가운데 1%에 지나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대 군인들도 피할수만 있다면 적군의 몸을 찌르지 않는 방식으로 무기를 쓰려는 경향을 보인다.

근접전에서 독일군은 몽둥이와 곤봉, 날을 세운 삽을 선호했다고 한다.

 

ㅡ 남북전쟁의 수많은 사건들은 양군 대다수 병사들이 총검 사용을 싫어했음을 증명한다.

총검으로 적군의 내장을 무참히 쑤시기보다는 개머리판을 사용하거나

소총의 총열을 잡고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ㅡ 군인들의 이러한 행동에서 드러난 것은 오히려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본성이다.

1) 군인은 적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살해하는 것을 더 어려워하고, 총검 사용거리에까지 이르게 되면

적을 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된다.

2) 평범한 인간은 자신과 다를바 없는 다른 인간의 신체를 손에 쥔 날카로운 무기로 찌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며, 찌르기보다 때리거나 베기를 더 선호한다.

 

ㅡ 2차 대전 참전용사인 프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총검으로 위협하며 칼끝을 들이대기만 해도 대개 상황은 종료된다.

거의 모든 병사들은 칼에 찔릴 상황에 처하면 예외없이 두손을 들고 만다."

 

ㅡ 총검의 목적은 적군을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대를 와해시키고 진지를 차지하는데 있다.

총검의 재빠른 움직임과 총검을 쥔 자의 눈에 서린 결심은 적에게 큰 충격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ㅡ 착검돌격으로 인해 한편의 군인들이 등을 보이며 달아날 때가 돼서야 비로소 살인은 본격화된다.

본능적으로 적에게 등을 보여야 할 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적에게 등을 보일때 공포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2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추격본능, 동물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인간에게도 추적본능이 있고 도망치는 적군을 죽이는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것처럼 보인다.

2) 얼굴을 보지 못하면 물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라 하더라도 이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이는 처형이 왜 하나같이 머리 뒤편에서 총을 쏘는 방식인지,

교수형이나 총살형 집행시 왜 처형되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거나 머리에 덮개를 씌우는지 잘 알 수 있다.

피해자의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는 수단들은 처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거리의 형식을 제공하며,

자신과 같은 종인 인간을 죽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합리화한다.

눈은 영혼의 창이다.

 

ㅡ 적군의 목을 베려다가 오히려 자기 손을 베고 만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제4부. 살해의 해부 - 고려 대상이 되는 모든 요인들

 

전투경험이 없는 자들은 "적의 사격을 받았을때"가 적에게 사격을 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될것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참전 용사들은 "사격명령을 받았을 때"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언급했다.

 

ㅡ 2차 대전 당시, 지휘관이 전장에서 직접 관찰하고 격려할 때는 거의 모든 군인들이 무기를 발사하는 반면,

지휘관이 자리를 떠나 있을때는 사격비율이 즉각적으로 15~20%로 감소했다.

 

ㅡ 전투를 지속시키고 있는 유일한 힘은 병사들의 고통을 감수하는 지휘관과 그의 의지다.

그가 더이상 투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항복 명령을 내리는 시점에서 공포는 끝이난다.

죽을때까지 싸우기를 선택하는 지휘관들은 영광의 불꽃속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들어간다.

 

ㅡ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견디고 살아남은 지휘관이 치러야할 대가는 너무나 크다.

그는 병사들의 미망인과 아이들에게 대답해야 하며,

죽을때까지 그의 보살핌 아래 목숨을 맡겼던 자들에게 저지른 일을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

 

ㅡ 병사들은 동료 병사들과 유대관계로 묶여있을 때,

그리고 그가 그의 집단과 함께할 때, 살해에 가담할 가능성은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부재할 경우, 개인이 전투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확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ㅡ 집단은 책임감을 형성할뿐 아니라, 익명성을 발달시켜줌으로써 살해와 폭력에 기여하도록 한다.

무리를 짓게되면 누구든 감정이 고양되기 마련이다. 공격성은 커지고 기쁨 또한 더욱 커진다.

또한 집단은 죄책감을 각 개인의 머릿수대로 분산시킴으로써

개인적 책임을 희석할 수 있게 되어 살인은 한층 쉬워진다.

 

문화적 거리는 적군을 인간 이하로 편향되게 보여주는 자료들을 활용하여,

마주해야 할 적군을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들의 문화적 관습을 조롱하고, 인격을 사악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 피터 왓슨, <전쟁을 생각하다.>

 

나치만이 전쟁에서 인종적, 민족적 혐오의 검을 휘둘렀던 것은 아니다.

유색인종을 향한 유럽 제국의 정복과 지배는 바로 이러한 문화의 거리요인에 의해 조장되었다.

 

도덕적 거리는 자신과 자신의 대의를 정당화하는 것과 연루되어 있다.

대개 적군에게 죄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처벌하고 보복해야 한다는 확고한 결단과 비난, 자신의 대의가 적법하고 정당하다는 확신이다.

 

처벌의 정당화 : "알라모, 메인, 진주만을 기억하라."

 

법적 확증 : "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ㅡ 도덕적 거리의 과정 대부분은 문화적 거리의 과정보다는 가혹 행위를 유발할 위험이 적고,

국제연합같이 적대행위를 막고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원칙을 지키는데 더 기울어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도덕적 위험은 모든 국가들이 신은 오직 자기 나라 편만 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ㅡ 기계적 거리, 열영상 장비나 야간투시장비, 모든 것이 마치 텔레비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ㅡ 지휘관과 기수들은 항상 집중 공격목표가 되어왔다.

종종 누구를 죽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누가 가장 위험한 무기를 맡고 있는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예를들면 기관총 사수

항복하는 모든 군인들은 자신이 해야할 일은 무기를 버리는 것이지만 영리한 자는 철모 또한 벗어던질 것이다.

총알이나 포격으로부터 목숨을 구해줄 확률이 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UN평화유지군이 철모보다 전통적으로 베레모 착용을 선호하는 것은 바로 철모에 대한 이러한 반응 때문이다.

 

ㅡ 1892년 프랑스 군 다호메이 원정 도중 프랑스 군 외인부대는 여성 전사들로 이루어진 기이한 군대와 맞닥뜨렸다.

역전의 용사들은 총을 쏘거나 총검으로 찌르기를 주저했다고 한다.

 

ㅡ 여성과 아이들의 존재는 전장의 폭력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전쟁 경험으로 인해, 이후 줄곧 여성을 전투에 투입하기를 거부해왔다.

그 이유는 전쟁 당시 여성 전투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보고

동료 남성 전투원들이 폭력성을 억제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아랍 군인들 또한 여군에게 항복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ㅡ 밀그램 요인

1) 권위자의 명령 - 근접성, 주관적 존경, 명령의 강도, 권위와 적법성

2) 집단 면죄 - 집단과 자신의 동일성, 근접성, 집단의 강도, 인원수, 적법성

3) 피해자와의 거리 - 물리적, 정서적 거리

 

ㅡ 셜리트 요인

1) 피해자를 살해하는데 쓸수 있는 전략의 타당성과 효율성

2) 피해자가 살해자 및 살해자의 전술적 상황에 위협을 끼치는 정도

3) 살해자의 보수, 이득

4) 적군의 손실

 

ㅡ 살해자의 성향

1) 군인의 훈련과 조건형성 - 개선된 육군의 훈련 프로그램

2) 군인의 최근 경험 - 전우의 죽음


제5부 살해와 잔학행위 - 그곳에는 영예도, 미덕도 없었다.

 

ㅡ 홀로코스트는 유대인과 무고한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살해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살해는 무의미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아무 생각없이 벌인 일은 아니었다.

아주 강력한 그들만의 삐뚤어진 논리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잔학 행위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해해야 할 논리다.

 

ㅡ 나치의 홀로코스트, 수련의 굴라크, 천안문 광장에서의 대학살 등

독일군은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킬 기회를 포착하는데 실패했고

조국을 등진 소련군 부대를 자신들의 대의에 맞게 전환시키는데 실패했다.

독일군은 인종주의와 잔학 행위에 기반을 두고 적군의 인간성을 부인함으로써

전투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태도는 동시에 아리아인 이외에는 그 누구도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초기 우크라이나 인민들은 나치를 해방자로 환영했고

소련군 부대는 집단적으로 투항했지만, 머지않아 스탈린주의 소련보다 더 나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국과 보스니아에서 정책적으로 벌어진 잔학행위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잔학 행위의 길을 선택한 자들은 그들 뒤에 놓여 있던 다리들을 불태운 것이다.

돌아갈 길이 없어진다.

 

ㅡ 2차 대전 발지 대전투 당시, 독일 친위부대는 맒디에서 미군 포로들을 학살했다.

미군은 절대로 독일군에게 항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이와 반대로 최후의 순간까지 소련군과 싸우고자했던 많은 독일군들은 명예롭게 항복할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그 즉시 미군에게 항복하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적군의 역량 또한 강화했던 것이다.


제6부. 살해 반응 단계 - 살해할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가.

 

ㅡ 사람들은 죽어가면서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을 포함한 일련의 정서적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전투 살해의 기본 반응 단계들은 살해에 대한 염려, 실제 살해, 도취, 자책, 합리화와 수용이다.

대게 연속적으로 나타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 단계를 건너뛸 수도 있고,

떄로는 여러 단계가 동시에 뒤섞여 나타날 수도 있으며,

혹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거쳐갈 수도 있다.

 

ㅡ 군인들이 처음으로 드러내는 정서적 반응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에 적군을 죽일 수 있게 될지

아니면 '얼어붙어서', '동료들에게 실망감을 줄지' 걱정하는 염려다.

 

ㅡ 살해단계 : 생각할 틈도 없었다.

ㅡ 도취단계 : 아주 강렬한 만족감을 느꼈다, 전투쾌감(Combat High), 모르핀을 맞았을때 일어나는 반응과 비슷.

ㅡ 자책단계 : 고통과 공포의 콜라주

ㅡ 합리화와 수용단계 :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합리화가 필요했다.


제7부. 베트남에서의 살해 - 우리는 군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ㅡ 2차 대전에 비해 베트남에서 총을 쏘지 않은 군인의 비율은 5%에 가까웠다.

이러한 사격 비율의 증가에는 대규모로 심리적 안전장치들이 무효화되면서

몇몇 심리적 트라우마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증가했다.

살해 비율을 놀라우리만치 높이기 위해 활용된 3가지 기법은

둔감화(desensitization), 조건형성(conditioning), 부인 방어기제(denial defense)다.

 

ㅡ 둔감화 :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 - "죽여, 죽여"하고 구호를 외치는 일

 

ㅡ조건형성 : 생각할 수 없는 것을 행하기

파볼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과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형성, 보상과 인정 그리고 처벌,

사격장의 튀어 오르는 사람 형태의 과녁은 조건 형성된 자극이고 즉각적으로 표적을 맞추는 행위는

목표행동(target behavior)로 정적강화다(positive reinforcement)

 

ㅡ 부인 방어기제 :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부인하기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E형 표적의 실루엣을 겨냥해 쏘고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 가운데 하나는 군인들이 전투 중에 항상 권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군대도 무질서하거나 무차별적인 사격을 용납하지 않는다.

계급이 높은 권위자가 명령했을떄,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격 대열 내에 있을 때에만 총을 쏜다.

 

ㅡ 통계적으로 참전 용사들의 폭력 범죄율은 일반인들의 폭력 범죄율보다 결코 높지 않다.

 

ㅡ 살해의 합리화와 수용

- 동료와 상관들의 끊임없는 칭찬과 보증

- 교전수칙과 협약에 대한 존중

-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후방이나 명확하게 정의된 안전지대

- 전쟁에서 귀환하는 안정화 시기

- 신뢰할만한 전우의 존재

- 퍼레이드와 기념비

- 전우들과의 모임

 

ㅡ "그들이 나를 살인하도록 훈련시킨 다음 베트남으로 보냈어.

내가 아이들과 싸우게 될 거라는 말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고."

많은 이들에게, 이것이 바로 베트남에서 벌어진 일들이 일으킨 공포의 정수다.

여자와 아이들을 죽여야 할때, 혹은 그들의 집 안에서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자들을 죽여야 할때 느끼게 되는 공포감은 묘사나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ㅡ 부대단위로 귀환하는 안정화 시기는 일종의 집단 치료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ㅡ 모든 전사 사회와 부족, 국가는 귀환하는 군인들을 위해 정화의례를 만들었고,

이 의례는 귀환하는 전사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ㅡ 군사 행동과 전략의 실패에서부터 불필요했던 인명 손실과 완전한 실패감에 관한 감정, 질문, 의심, 비판 등

모든 쟁점을 쏟아내는 길고긴 과정을 거쳤다. 구체적이고 심리적으로 중요한 작전 후 브리핑과 사후 검토가

본국 기지에서도 실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ㅡ 전쟁 이후 사회가 보내는 지지는 전투의 강도 자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베트남 전쟁이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그 전쟁에서 싸웠던 군인들은 집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심리적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군인이 스스로 고립되었다고 느낄때, 정신적 사상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한다.

 

ㅡ 귀환한 참전 용사들은 수치스럽게 침묵하면서 동료 시민들의 비난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살해를 했고, 어느 정도까지는 침을 맞거나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꼈다.

공개적으로 모욕이나 굴욕을 당했을 때, 이들의 트라우마는 증폭되었고

이러한 사건을 무력하게 받아들임으로써 트라우마는 강화되었다. 두려움과 죄책감도 확증되었다.

 

ㅡ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민간인 복장을 한 아이와 싸웠기 때문에,

그리고 후방도 없고, 한번도 휴식을 취하거나 전투에서 멀어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가 견딘 트라우마는 2차 대전 참전용사의 트라우마보다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트라우마 척도의 꼭대기에 있따는 점에서, 둘 사이의 경중을 따진다는 것은

마치 검정색 가운데 어떤 것이 더 검어보이는지를 따지듯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ㅡ 군대는 또한 전투중은 물론 전투 후에도 부대 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전쟁에서 귀환하는 취약한 시기 동안

안정화 기관과 퍼레이드, 부대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심리학, 정신의학, 의학, 상담학, 사회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전투 살해가 군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해야 하며,

이 책에서 제시된 합리화와 수용의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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