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11. 세계의 특수작전 1>

by leeesssong 2020. 2. 2.

 

한줄평 - 특수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체력뿐만이 아닌 다양한 것들이 준비되어야하는데,

우리 특수부대는 본말전도 되지 않았는가? 다양한 것들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는가?

+ 네이버를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세계의 특수작전 1(http://m.terms.naver.com/list.nhn?cid=42161&categoryId=42161&subCategory=on)


1. 세계의 특수부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특수부대는 존재해왔다. 세계에는 다양한 특수부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특수부대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특수작전이란 무엇인가?

'전시나 평시를 막론하고 비상사태나 전략적 우발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특수한 작전'

 

ㅡ특수부대가 수행하는 특수작전은 대표적으로 다음 아홉가지로 분류한다.

타격작전, 특수정찰, 비정규전, 대게릴라작전, 해외방어원조, 대테러작전, 민사심리작전, 정보작전, 기타 통수권자나 국방장관이 지정하는 모든 임무.

통수권자나 국방장관이 요구하는 임무라면 '무엇이든' 수행한다는 것이다.

 

ㅡ전투의 전문가 집단인 특수부대는 본질적으로 최정예의 경보병이다.

좀 더 특수화되고 정예화된 무장과 장비를 사용한다. 과정에서 특수부대는 여러가지 시험적인 장비를 실제로 사용해본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특수부대는 새로운 군장비의 시험장이자 등용문으로서 보병장비의 첨단화에 기여하고 있다.

 


2. 대담하고 기발한 특수작전

 

2-1.코프 특공대의 그라닛작전 - 에방에마엘 요새 직접타격작전

 

ㅡ왜 낙하산 강하작전이 아니라 글라이더 강습작전이었을까?

이유는 정밀한 타격을 위해서였다. 낙하산 강하를 경우 강하까지 3분이나 걸리고 대원들이 무려 300M 가량 흩어지는 반면, 글라이더는 조용히 접근하여 10명의 대원을 목표지점까지 정확히 투입할 있었다. 그리고 글라이더에는 많은 양의 폭발물과 중화기, 화염방사기 등을 실을 있었다.

 

독일 공군 정예공수부대인 팔시름예거 1공수연대 1중대장 코흐 대위는 6개월 동안 작전을 준비하고 기밀을 유지했다.

그라닛 작전은 세계 최초의 글라이더 기습작전이었다. 특히 62명의 대원만으로 700여명이 경비하던 세계 최강의 최첨단 요새를 불과 15분만에 점령했다. 글라이더와 중공장약이라는 신무기를 100% 활용한 창의적인 특수작전이었다.


2-2.영국 코만도의 채리엇 작전 - 무모하고도 위대한 타격작전

 

ㅡ2차대전 당시 폭격은 악명 높을 정도로 부정확했다.

목표물로부터 8KM이내에 떨어진 폭탄은 투하한 전체 폭탄의 22% 불과했다.  

처칠 수상은 1940 창설된 소규모 기습부대인 '코만도'에게 임무를 주었다.

한달도 안되는 준비기간 동안 코만드는 1척의 구축함과 여러정의 고속정과 고속포함을 독일해군처럼 개조해 기만책을 사용했고, 함정에 폭약을 싣고 장착했다.

 

작전의 성공으로 영국 해군의 숙적인 티르피츠는 이상 대서양에서 작전을 없게 되었다. 채리엇 작전 참가자에 대하여 무려 74개의 훈장을 수여했고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이 무려 5개나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수여한것보다도 많은 수라고 한다.


2-3.프랭크턴 작전

 

밤에는 카누로 이동하고 낮에는 은신하면서 100km 이르는 거리를 극복한다.

그리고 항구에 도착해서 6~12척에 이르는 수송선박을 파괴한 육로를 이용해 스페인으로 퇴출한다.

 

독일군의 피해는 엄청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커다란 성과는 소규모 특공대에 무너진 것에 대한 충격과 공포였다.


2-4.할링 작전, 그리스 최대의 파괴공작 - 고르고포타모스 교량을 폭파하라

 

-북아프리카로의 군수지원을 막기 위해 영국의 SOE 그리스의 저항세력 EDES ELAS 연합 습격


2-5.바이팅 작전, 영국 1공수여단 - 전자첩보전 역사의 시작

 

영국본토항공전 승리 이후 겨우 독일 본토에 본격정긴 타격을 가할 있게 되었지만 1941 이후 독일의 레이더 시스템에 의해 영국 폭격기들의 피해가 급증했다.

 

ㅡ이에 뷔르츠부르크 조기경보레이더를 무력화하기 위해 영국은 이를 탈취하기로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120명의 대원이 130여명의 독일군 방어부대를 상대로 기습작전을 펼쳐 성공을 거두었고 무엇보다 레이더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성과를 바탕으로 독일군 레이더에 전파방해를 일으킬 있는 방법을 알아냈고 이런 신장비와 전술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2-6.푸앵트튀오크 전투, 육군 레인저 -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선봉

 

작전명 '오버로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해안에 붙은 암호명은 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 하지만 5개의 해안보다 위험스러운 목표지점이 푸앵트뒤오크라는 천연요새였다.

 

ㅡ예상보다 독일군의 수는 적었고 레인저는 절벽을 등반하고 고지를 점령하고 증원병력이 올때까지 이를 사수했다. 그러나 오마하 해안의 상륙부대가 악전고투를 거듭함에 따라 오후가 되었음에도 레인저는 내륙으로 진격하지 못했고 예상보다 훨씬 시간동안 푸앵트뒤오크를 사수해야만 했다.

레인저 2대대는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만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선봉에 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2대대는 디데이 임무를 제일 먼저 완료한 부대이기도 했다.


2-7.이탈리아 해군 잠수특공대의 활약 - 유인어뢰로 최강의 함대를 침몰시키다

 

이탈리아 군은 1940 알렉산드리아 항에 정박중이던 항공모함 아크로열, 전함 퀸엘리자베스, 밸리언트를 격침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이탈리아는 '자살임무' 수행할 지원자를 모집했고, 2개월간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임무를 준비했다.

잠수함에서 발사된 3대의 어뢰는 6명의 특공대원을 태우고 알렉산드리아 항남쪽 출입구로 향했다.

유인어뢰가 선체에 접근하자 폭탄을 설치하고 시한장치를 작동했다.

결국 1941 12 영국군 전함 밸리언트와 엘리자베스 그리고 유조선 사고나가 침몰했다.

 

ㅡ윈스턴 처칠은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기습사건을 놓고 "용기와 천재성을 보여준 놀라운 "라면서 적군의 기습작전이었지만 대담성과 기발함에 찬사를 보냈다.

결국 영국 해군도 이탈리아군의 유인어뢰를 수거하고 분석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 해군의 전술을 답습하여 자신들만의 전술을 만들었다.

 


3. 표적을 확보하라

 

3-1.TF-145 고가치표적 작전 - 자르카위를 사살하라

 

미군에 의해 점령된 이라크는 이제 4세대 전쟁의 무대로 바뀌었다.

자르카위의 방식은 인질들을 참수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방송하며 테러의 효율성을 선전하고 테러자금을 모으며 지원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자르카위는 본능적으로 4세대 전쟁의 본질을 깨닫고 있었다.

자르카위는 여러 차례 미군과 다국적군의 포위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면서 빈라덴에 버금가는 명성을 쌓았다.

 

ㅡ자르카위와 같은 고가치표적(HVT) 체포하기 위해 특수부대들은 다양한 작전에 투입되었는데, 특히 '소프트녹(Softnock)'이라는 작전 형태가 반복되었다.

 

ㅡHVT 출연의심지역으로 출동하여 1 착륙지는 목표물, 2 착륙지는 목표물 인근 500m 이내, 3 착륙지는 목표물로부터 3~6km 떨어진 , 아주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통 3 착륙지를 선호하였다. 감시조와 후방경계조를 제외한 공격조가 은밀히 목표지점으로 접근한다. 이후는 전형적인 내부소탕(Close Quarter Battle; CQB)이다.

 

작전의 목표는 자르카위를 생포하는 것이었지만 현장의 상황은 달랐다. 현장의 정찰조만으로는 인원부족으로 자르카위를 생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고, 당장 공격하지 않으면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공습으로 자르카위를 사살해야 했다.

이렇게 자르카위와 그의 아내, 자식들 목숨을 잃었지만 자르카위 사람의 사망으로 이라크에 평화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다. 또한 이라크 알카에다 조직이 붕괴한 것도 아니었다.


3-2.넵튠스 스피어 작전 - 빈라덴을 사살하라

 

다양한 작전안이 대통령에게 제시되었다.

B-2스텔스 폭격기로 정밀폭격, 무인기로 정밀폭격, 그리고 특수부대의 투입.

 

레드지역대의 1, 2소대가 2대의 스텔스 헬리콥터에 분승하고 1소대는 저택 바로 앞에 강하하여 1층부터 내부소탕, 2소대는 4 1조가 저택 옥상에 강하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소탕을 실시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저택 외부에 전개하여 차단선을 구축하고 내부로부터의 탈주자를 체로하거나 혹시 모를 외부 증원병력을 제거하는 것이 작전계획이었다.

 

ㅡ"제로니모, 제로니모, EKIA(Enemy Killed In Action)"

 

실제교전에서 빈라덴 사살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SSE활동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3-3.크라이페 장군 납치작전 - 독일군 수장을 납치하라

 

영국의 SOE 작전팀은 독일군 사령부와 크라이페 관저 주변을 정찰했고, 관저로 침투하여 납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최선의 방법은 사령부와 관저 사이를 차량편으로 이동하는 크라이페를 잡치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독일군 제복을 구하는 한편, 크라이페의 이동을 예의주시하며 어둠 속에서 그의 차량을 식별할 있도록 훈련을 거듭했다.

 

차량이회전을 하기전에 반드시 속도를 줄여야하는 T 교차로를 최적의 매복장소로 판단하고 독일 헌병복장을 입은 상태로 차량의 접근을 기다렸다. 2명이 차량을 정지시키고 6명이 길가에서 매복하고 있었으며, 50m 외곽에 차단선을 지역 레지스탕스가 구축하고 있었다.


3-4. 2차대전 유일의 표적사살작전, 안드로포이드 - 프라하의 학살자

 

하이드리히는 공폴르 통한 지배능력으로 체코 전역에 과시했으며 '프라하의 학살자' 별명으로 불렸다.

 

영국 SOE 하이드리히의 차량이 속도를 줄이며 코너를 돌자마자 차량의 앞을 막아서고 스텐 기관단총을 꺼내 쏘려하였으나 기능고장으로 차량안에 수류탄을 던져넣었다.

 

수류탄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으나 파편이 튀면서 하이드리히는 부상을 입었고 일주일 뒤에 결국 사망하게 된다.

이때 수류탄에는 SOE 개발한 보툴리누스균이 삽입되어 있었고 이것이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라고 한다.


4. 특수부대는 만능이 아니다.

 

4-1.니프티 패키지 작전 - 노리에가의 퇴출로를 막아라

 

ㅡ1989 미국은 민주주의 헌정회복 마약범죄자인 노리에가 장군의 체포를 명분으로 파나마를 침공했다.

바로 '대의명분 작전(Operation Just Cause'이다.

 

특수한 기습작전이나 대테러작전을 제외하고는 소대간 대규모 연계작전은 팀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작전소대중 G소대가 선두에 서서 노리에가 전용기를 확보하고 후속의 B소대가 전개해 경비행기를 장애물로 활주로에 늘어놓음으로써 활주로를 봉쇄한다. 확보한 24시간 이내에 75 레인저연대 2대대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단일 전투에서 많은 전사자를 기록했고, 작전목표, 적절하지 못한 부대의 투입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4-2.레드윙 작전 - 아프가니스탄 최악의 참사, 서바이버

 

10팀의 임무는 탈레반 지도자이자 빈라덴의 측근인 아마드 샤를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이었다. 2005 머피 대위, 액셀슨, 디츠, 러트렐 병장 4명이 파키스탄 접경을 향했다. 대원들을 내려놓기 시누크는 세차례 '터치앤고' 실시했다. 탈레반이 헬리콥터 소리를 듣고 달려오더라도 도대체 어디에 대원들이 내렸는지 알지 못하도록 기만하기 위한 기동이었다.

 

아마드 샤는 NBC 인터뷰에서 구출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자신들이 함정에 미군이 그대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미군은 자기 편이 당하면 언제나 구출하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전장의 법칙이다."

 

작전은 참패였다. 19명의 특수부대원이 사망했다. 고가치 표적 확보라는 작전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이후 미군은 HVT 대한 작전 수행에 있어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추구하게 되었다.

CIA 운용하는 프레데터 UAV 의한 헬파이어 미사일 공격이 그중 하나다.


4-3.그레나다 침공의 선봉에 네이비실의 실패 - 불가능은 존재한다.

 

데브그루는 대테러작전에 전력을 집중하였는데 전략정찰과 직접타격임무가 주어졌다.

이는 평상시에 중점을 두고 훈련한 임무가 아니었고, 준비할 시간도 거의 없었다.

 

실팀에게 주어진 임무는 해안정찰을 임무로 하는 4팀이나 2팀이 아니라 대테러임무에종사하는 6팀이 동원되었다. 한편 75 레인저연대의 강하직전에 필요한 레이더 비콘을 설치하기 위해 CCT 4명도 정찰팀에 합류했다.

 

작전의 개요는 낙하산으로 해상에 강하, 휴대용 조디악 고무보트를 이용하여 상륙. 공항에서의 배치 현황 주요 정보를 파악하고 CCT 비콘을 설치하고 레인저들이 공수할때까지 강하지점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스카이다이빙 달인인 데브그루도 군용낙하산(MC1-1B) 사용하지 않은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이들이 착용한 장비의 무게를 감안하면 군용낙하산을 메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원들이나 같이 투하된 보트에는 적절한 조명신호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 위치를 확인할 없었고, 결과 정예대원 4명이 익사하였다. 엔진은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강한 해류에 밀려 보트는 멀어져 갔다. 2번째 임무는 높은 파고에 익숙지 않았던 CCT들은 보트를 뒤집어엎어버려 휴대장비 대부분을 유실하여 임무는 영원히 취소되었다.

 

데브그루는 본래의 성격에 맞지 않는 다른 임무에 투입된다. '그레나다 자유라디오'방송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는 직접타격을 행해 방송국 점령이 첫번째 목표, 그리고 두번째 목표는 후속부대 도착시까지 수신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사수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적군은 천명 이상의 반군과 2천명 이상의 민병대원이 작전지역에 존재했다. 14 3. 아무리 시시한 국가의 민병대원이라 해도 산술적으로 대적이 불가능한 숫자였다. 점령은 쉬웠으나 대원들은 '총알로 길을 뚫어가면서' 바다로 향했다.

 

준비되지 않은 합동작전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도출되었다. 사이에 통신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같은 지역에 투입된 부대끼리도 서로 교신할 없었다.

 

첫번째 임무에서 배운 가장 교훈은 작전계획을 될수록 단순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런 단순함을 'KISS(Keep It Simple and Stupid)'라는 약자로 표현된다.

 

ㅡ'두개는 하나고 하나는 없는것과 마찬가지'라는 군사격언이 있다. 예비용 장비를 반드시 휴대하라는 것이다.

 

두번째 방송국 점령임무의 교훈은 더욱 간단하다. 특수부대가 없는 임무가 있다면 할수 없다고 솔직명료하게 지휘부에 알려야 한다. 통상 정규부대 출신이 많은 지휘부는 특수부대가 어떤 일을 있고 어떤 일을 할수 없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노련한 장군이라도 특수부대를 거치거나 지휘한 경험이 없다면 능력과 한계를 모를 수밖에 없다.


4-4.마야구에즈 피랍사건 - 미군 최악의 구출작전

 

당시만 하더라도 전문적인 해상 인질구출부대나 작전이 확립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특수작전의 범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규모 병력만을 쏟아붓는 작전의 구상과 실행은 귀중한 전투력의 손실을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마야구에즈호 구출작전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4-5.어그리먼트 작전 - 합의되지 않은 특수작전의 처절한 실패

 

토브룩을 점령함으로써 롬멜의 DAK(독일 아프리카 군단)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로 진격할 있는 중요한 전진보급기지를 입수하게 되었다. 특히 롬멜은 토브룩에서 영국군을 몰아냄으로써 후방에서 적에게 기습당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토브룩의 항만시설을 확보함으로써 보급로를 단축할 있었다. 반면 영국과 연합군에게 있어서 토브룩은 파괴해야만 대상이었다.

 

이름과는 달리 작전에 참가하는 부대들 간의 합의를 찾아볼수 없었다.

작전목표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부 전술에 대해서도 거의 토론하지 못했다.

작전의 결과는 재앙이었다. 애당초 소규모 기습작전이 대규모의 공동작전으로 바뀌면서 작전 성공 가능성 자체가 낮아진데다가 작전계획도 세부적이지 못했다.


4-6.이집트 777부대의 인질 구출작전 - 기본기없는 작전 수행으로 재앙을 자초하다.

 

미국의 델타포스로부터 훈련을 받은 이집트의 정예특수부대 777부대를 투입하였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텔타포스에서 파견한 교관과 함께 훈련하며 대테러 능력을 향상시켜왔다.

하지만 777부대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훈련을 통하여 우수한 요원을 양성해도 수준을 유지할 없었던 것이다.

 

ㅡ언어 능력이나 이해도가 높은 장교들은 승진을 위해 다른 부대로 전출하기 일쑤였고, 부사관 병사들은 전술의 이해도나 숙련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게다가 빈약한 예산으로 인하여 대테러 작전에 필수적인 섬광탄이나 도감청장비 특수장비를 도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엔테베나 모가디슈에서 있었던 성공적인 인질구출 작전의 결정적 요소인 기만작전 또한 전혀 준비되지 않고 있었다.

 

777부대는 여객기의 출입문을 동시에 개방하여 진입하는 대신, 항공기 후방의 화물칸을 폭파하여 항공기 후방의 화물칸을 폭파하여 후방으로부터 진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폭발물을 터뜨리자 산소탱크도 같이 터지며 인질 6명은 그자리에서 사망했다. 화재까지 발생하여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아수라장 속에 대원들은 자제력을 잃고 자동화기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흥분이 최고조에 다다른 777부대원들은 기체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화재에 휩싸인 여객기, 비상구로 탈출하는 사람들, 주변을 휩싼 연막 등으로 인해 누가 테러범이고 누가 인질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한채, 777부대는 계속 제압사격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남아있던 67 가운데 58명이 사망했다.

 

정보수집, 분석능력의 부재, 적절한 공격기회의 실기, 디테일 없는 작전구상 실행,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부대수준으로 말미암아 특수작전의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