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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12. 세계의 특수작전 2>

by leeesssong 2020. 2. 7.

 

한줄평 -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특수부대의 능력은 대원들의 엄청난 체력이나 값비싼 최첨단 장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경험을 갖춘 '리더'에서 나온다. "

* 네이버를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세계의 특수작전 2 (http://m.terms.naver.com/list.nhn?cid=42162&categoryId=42162&subCategory=on)


1. 오늘날 특수부대의 활약

 

1-1. SAS 미르바트 전투 - 오만 석유를 지키기 위한 그림자 전쟁

전쟁사에 기록될만한 치열한 전투였지만 미르바트 전투는 한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영국이 오만 내전에 개입한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0 9 싸움에서 SAS 미르마트 기지와 25파운드 포진지를 사수해냈다.


1-2. SAS 페블섬과 리오그란데 기습작전 - 아르헨티나 공군력 마비 / 포클랜드 전쟁

ㅡ1 3km 순행해온 영국 기동함대의 최대의 적은 바로 아르헨티나 군이 보유한 쉬페르에탕다르 공격기와 5발의 엑조세 대함미사일이었다.

 

SAS 주어진 임무는 아르헨티나 본토의 리오그란데에 위치한 항공기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작전목표는 엑조세 대함미사일과 플랫폼인 쉬페르에탕다르 공격기 5대를 모두 파괴하고 조종사를 사살하는 것이었다.

 

SAS 전통적으로 퇴출수단이 아예 없는 임무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보여왔다.

 

영국군은 동류전환(다른 전투기의 부품을 빼내서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으로 항공기를 수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공기마다 같은 부분에 사격을 집중했다.

 

작전을 시행하기 기만작전을 준비하던 헬리콥터 메인로터에 갈매기가 충돌하며 22명이 익사하였다. 불과 2년전 1980 런던 주재 이란 대사관 인질 구출사건을 성공리에 수행하면서 언론의 각광을 받은 SAS지만, 실전은 달랐고 최고의 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알고 향상시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자신들이 무엇을 없는지 명확히 임무의 한계를 긋는 과감성도 필요한 것이다.


1-3. 텍사스 14 데브그루의 활약 - 나라의 지도자를 세우다.

탈레반 정권의 전복, 새로운 지도자의 선출, 그리고 지도자의 목숨을 지키는 경호임무까지 아프가니스탄의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특수부대가 있었다. 이렇게 특수부대는 4세대 전쟁에서 최고의 자원으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있다.


1-4. 프라임챈스 작전 - 특수전 해상기지로 해상교통로를 사수하라

ㅡ 1987 해군은 작전은 페르시아만을 항행하는 상선들을 해군함대가 호송하는 '어니스트 ' 작전을 실시했다. 이런 임무의 가장 장애물은 바로 기뢰였다. 기뢰를 제거하기에 해군이 보유한 소해전력이 부족했고 매우 좁은 해협은 소형보트의 기습공격에 취약하였다.

이에 어니스트 윌의 지원세력으로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상륙지원함이나 초계함을 플랫폼으로 하여 작전을 수행했고, 특수부대의 투입은 극비로 분류되어 프라임 챈스 작전으로 명명되었다.

 

- 해군은 베트남전시 '시플로트(SEAFLOATE)'라는 이동해상기지(Mobile Sea Base) 띄워놓고 해상교통로에서 공산레릴라를 몰아낸 경험이 있었다.

이동해상기지로는 대형 바지선 2, 허큘리스와 빔브라운7 선택되었다.

허큘리스에는 TF-160 시배트1개조, SEAL 파견대인 특수전기동부대 부대가 배치되었다. 무려 2만개의 모래주머니가 이곳에 배치되어 바지선 전체가 요새처럼 구축되었다.

적의 접근을 사전에 탐지하기 위해 청음초를 설치하였고, 청음초는 항로표시부이에 설치를 하였다. 이는 이란이 주간에는 항구나 석유시추용 플랫폼에 숨어있다가 야간이 되면 항로표시부이 인근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부이는 유조선에게 항로를 알려주는 장비로 유조선의 길목에 버티고 있었다.

 

허큘리스는 철저한 사전대비를 통해 이란의 기습을 물리칠수 있었다.


2. 인질 구출작전

2-1. 그레나다의 폴스쿤 총독 구출작전 - 신용카드로 부대를 구출하다.

자신의 뒷마당인 중남미에서 쿠바와 같은 세력이 생기는 것을 용납할 없었던 미국은 1983 인민혁명정부가 쿠데타를 통해 좌경화의 기치를 내걸은 그레나다 침공을 결정했다. '어전트 퓨리 작전'이었다.

 

그레나다 침공에서 특서준부대에 맡긴 가장 중요한 임무는 그레나다 총독 스쿤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임무수행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1.부대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관저 정원과 테니스장에 하강, 작전 당일 05시까지 총독 관저에 잠입한다.

2.경계병력을 제압한 이후 스쿤 총독과 가족을 구하고 아군의 안전 지역까지 퇴출한다.

3.퇴출이 불가할 경우 증원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위치에서 총독 가족을 보호한다.

 

패스트로프 과정에서 SATCOM 무전기를 두고 내렸기에 무전기가 없는 상황이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마땅한 퇴출수단을 찾지 못한 구출부대는 일단 차단선을 구축하고 관저를 방어진지로 삼기로 햇다. 데브그루는 MP5 기관단총으로 무장하여 소총보다는 사거리도 짧고 살상력도 떨어져 싸움 자체가 불리했다. 하지만 당시 저격수의 G3SG/1 자동 저격총이 구세주가 되었다.

 

SATCOM 무전기를 두고 왔기에 인근 해역에서 대기중이던 항공모함이나 상륙함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이에 기지를 발휘한 대원이 국제전화로 포트브래그 JSOC 전화를 걸었고 자신의 신용카드 번호를 불러주고 결제하였다.

 

적군이 정규군이건 민병대이건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금언을 잊지말고 해외에 전쟁하러 나갈때는 신용카드를 챙겨가는 것이 낫다.


2-2. 모스크바 극장 인질 구출작전 -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 무자비한 대테러작전

ㅡ2002 테러범들은 체첸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모스크바 극장 내의 모든 인질을 사살하겠다고 했다.

 

언론에서 인질구출작전은 새벽 3시에 실시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구출작전은 시작되지 않았고 언론보도를 테러범들이 흥분하였다.

이것은 스페츠나츠가 준비한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실제 작전개시시각은 05시였지만 테러범들을 잔뜩 긴장하게 한다음, 한숨 돌리고 있을 무렵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극장의 건물 환풍시설로 가스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펜타닐, 수면가스였다.

 

가스 주입 30 진입을 시작했으나 주입한 가스의 양이 상당하여 알파 부대원 2명이 실신까지 했다고 한다. 돌입한 부대원들은 가스마스크를 착용한 테러범들을 닥치는 대로 사살했다. 혹시 무의식중에라도 사제폭발물의 스위치를 누른다면 구출작전은 실패로 돌아갈 있기 때문이다.

 

수면가스로 인해 스스로 호흡을 유지하기 힘든 인질들에게 도움이 필요했지만, 의료진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미비한 후속조치로 129명의 무고한 인질이 사망하였다.


2-3.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 1200명의 인질을 구출하라

ㅡ2004 러시아의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베슬란으로, 인근의 잉구셰티야 공화국의 프슈타크에서 무리의 무장세력이 산악 기지를 출발했다테러범들은 학교 건물과 1200명의 인질을 수중에 넣고 인질들을 학교 체육관으로 집결시켰다.

 

베슬란의 1공립학교는 1992 오셰티야-잉구셰티야 분쟁 오셰티야 민병대가 잉구셰티야 시민들을 수용했던 장소였다. 또한 베슬란은 1994 체첸 분쟁 당시 러이사 공군의 주요한 발진기지였던 것이다.

 

러시아 당국의 준비는 여전히 허술하여 폭탄테러의 위험이 있음에도 주변에 소방차를 대기시켜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002 모스크바 극장 테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구급차도 충분히 대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악의 상황 바로 오셰티야 민병대였다. 북오셰티야 공화국은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지역으로 인질의 친지들이 하나둘씩 총을 들고 사건현장 주변에 몰려들었고 수가 5천여명에 이르렀다.

 

테러범들은 2002년처럼 수면가스 공격에 당하지 않기 위해 체육관의 유리창을 모두 부수었다.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해 체육관의 벽에 구멍이 뚫리자 인질 14명이 도망나오고, 지역민병대가 테러범들을 향해 총격을 시작하자 테러범도 이내 반격을 가했다. 현장이 아수라장으로 바뀌자 스페츠나츠가 진입을 시작했다.

현장은 섬세한 고도의 인질 구출작전이라기보다는 대규모 군사작전에 가까웠다. 여기에 허술한 군과 경찰의 차단선을 뚫고 수많은 지역시민까지 자신의 총을 들고 전투에 참가했다.

러시아군은 BTR 장갑차로부터는 14.5x114mm KPVT 중기관총이 발사되었고, T-72 전차 2대는 125mm 전차포를 발사했다. 이쯤되면 인질구출작전과는 전혀 다른 무차별한 공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최초의 폭발로 인해 체육관 내부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소방차도 부족하고 물도 부족하여 결국 지붕이 주저앉으면서 160명의 인질이 사망했다그나마 구출된 인질 가운데 부상자가 700명이 넘었지만 구급차는 몇대에 불과했다.

 

ㅡ1200명의 인질가운데 334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 수는 783명에 이르렀따.

아무리 우수한 특수부대라 할지라도 대응절차를 확립하고 지휘통제계통을 구축하지 않는 , 작전은 실패로 이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베슬란 인질 구출작전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2-4. 차빈 우안타르 작전 - 4개월간의 인질극을 끝낸 페루 특수부대

ㅡ14명의 테러범은 중무장한 경호병력 300여명의 눈을 속이기 위해 유유히 구급차를 타고 페루의 일본 대사관저로 들이닥쳤다. 건물을 장악한 테러범들은 주요 지점에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대전차무기까지 대동했다.

 

4일만에 구출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하여, 페루군 특수부대는 4개월 동안 작전을 준비했다.

 

물병, 보드게임판, 서적 인질을 위한 구호물자에도 도청장치가 장착되어 대사관저 내부로 반입되었다. 또한 인질로 잡힌 지암페트리 제독은 지정된 위치에 카메라와 마이크 감시장치를 설치했고 소형무전기를 통해 테러범 몰래 지휘본부로 내부의 상황을 통보했다.

 

대사관 방벽은 너무높아 사다리를 통한 진입은 쉽지 않았고, 유리 또한 방탄유리였기에 헬리콥터를 통해 강하한 다음에 유리창을 파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허비될 것이었다.

가장 빠르게 대사관저 내부로 접근할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구출부대는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테러범들도 땅굴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인질들을 2층으로 옮겨 구출작전을 방해하고자 했다.

 

인질극이 한창일때 세계 여론은 페루를 비웃었다. 페루군은 정교한 인질 구출작전을 실행할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정문, 사다리, 땅굴을 이용해 투입하여 10분만에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28분만에 구출작전을 종료했다.


2-5. 마르세유 인질구출 - 프랑스 특수부대 GIGN

테러범들에게 에어프랑스는 바로 프랑스라는 나라의 상징이었고 테러범의 강한 신앙심은 인질들에게는 공포였다.

테러범들의 목적은 항공기를 파리에서 에펠탑에 충돌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정보당국은 폭발물이 기내에 장착된 정황을 석방된 인질들로부터 파악했다.

폭탄은 진입을 막거나 위협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항공기의 문이 폭탄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폭발물은 기체를 효과적으로 폭발하기 위해 장착된 것이었다.

 

언론 인터뷰의 명목으로 테러범과 인질들을 분리시켰다.

항공기 출입구를 개방하고 교전이 시작되면서 테러범이 조종속에 고립되어 있는 사이 나머지 팀은 항공기 후방으로 인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2-6. SAS 님로드 작전 - 런던 소재 이란 대사관 테러

SAS 본부에서는 긴급히 방탄유리를 파쇄할 폭파키트를 구성하는 한편, 정보팀에서는 50개의 방을 모두 묘사한 대사관의 축소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테러범의 위치를 찾는 부터가 문제였다. 감시장치와 집음장치를 설치하여 위치를 찾으려 하였으나 대사관의 벽이 너무 두꺼워 드릴작업이 테러범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이에 히스로 공항에 통보해 여객기가 대사관 상공에서 낮게 비행하도록 했다.

 

당시 대원들은 쓰이지 않던 MP5 9mm 기관단총으로 무장, 권총은 하이파워 9mm 자동권총, 섬광탄, CS 최루탄 그리고 S6 방독면을 씀으로써 다스베이더와 같은 위협적인 모습을 하였다. 이는 심리전이었고 테러범들이 제대로 반응할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ㅡ1980 11분간 생방송된 SAS 활약은 세계인의 뇌리에 깊게 새겨졌다.

그러나 님로드 작전의 성공은 10 년에 걸쳐 다양한 대테러작전을 입안하고 혹독한 훈련을 실시한 결과였다. 님로드 작전에는 명백한 실수도 있었지만,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있는 유연한 작전수행능력 덕분에 성공할 있었다.


2-7. 카바나투안 포로 구출작전 - 아군의 학살을 막아라

바탄 주둔 미국-필리핀 연합군은 일본군에게 투항함과 동시에 일본군은 필리핀군 6만명, 미군 1 5천명의 포로를 데리고 악명 높은 '죽음의 행진' 시작했다.


2-8. 머스크 앨라배마 인질 구출작전 - 미국판 아덴만 여명작전

진압작전은 고도의 기만전술로 시작되었따. 협상팀은 인질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함장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구명정에 남아있던 해적 3명은 함장만을 구명정 밖으로 보이도록 했다

바로 순간함정이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작전이 시작되었다.


2-9. 배트 21B 구출작전 - 베트남전 최대의 조종사 회수작전

한가지 명확해진 것은 전투수색구조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아예 수행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점이었다. 또한 더욱 정밀한 근접항공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야간항공작전의 필요성과 지역제압용 폭탄의 필요성 또한 확인되었다.

 

구출된 햄블턴 중령은 "1명을 위해 6명의 젊은이가 죽는건 지나친 대가다. (그들에게) 안할 뿐이다" 라고 기록을 남겼다.


2-10. 하케 작전 - 기만전술로 총성없이 성공한 콜롬비아 정보국

세사르와 모노 호호이 사이의 통신에 개입하여 양쪽 모두를 속이기 시작했다.

'하케' 영어로 '체크' 해당하는 체스용어로 장기에는 '장군' 해당하는 단어였다.

 

정보국은 인권구호단체를 가장하여 인질을 인도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판단하고 세부계획을 구상했다정보국은 기존의 인질석방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과정에서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되었다.

1.인질의 석방을 위해 헬리콥터를 사용한다는

2.석방과정에는 반드시 언론이 동참하여 촬영을 한다는

3.인질을 넘겨받는 중재달은 반드시 국제적십자사 마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헬리콥터를 이용해 구호단체, TV 리포터, 카메라맨으로 분장한 정보국은 세사르와 그의 부관, 그리고 인질들을 태우고 모노 호호이에게 데리고 가는 것처럼 기만작전을 펼치며 한발의 총성도 없이 테러범이 스스로 인질을 데리고 나오도록 사례를 만들었다.

틀에서 벗어난 사고와 과감하고도 세심한 작전 실행으로 콜롬비아군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이다.


2-11. 포이어차우버 작전 - 독일 GSG-9 모가디슈 인질 구출극

ㅡ1977 프랑크푸르틑 향해 비행하던 비행기는 마르세유를 통과할 즈음 테러범들음 항공기를 납치했음을 선언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로 서독에 수감된 자신들의 동료 10명과 함께 터키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테러범 2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작전이 하나하나 준비되는 사이 기만책 역시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서독 대표탄이 테러범과 꾸준히 통신하며 '석방된 테러범'들의 이동과정을 소상히 전달해주었고, 공격시각인 02시가 되자 피랍기 전방에 불을 지르자 이를 보려고 나머지 테러범들도 조종석으로 다가왔다. 이에 GSG-9 대원들은 진입을 위해 대기했다.

이들은 전방, 주익 양측 출입문으로 동시에 진입하여 후방부터 인질들을 소개하고 테러범들을 무력화 시켰다.


2-12. 네덜란드 BBE 인질구출작전 - 동시다발 인질사건을 해결하다

ㅡ1977 초등학교와 열차에서 동시에 테러상황이 벌어졌다.

 

어떠한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장정보 수집이었다. 정보에 더해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리허설을 시행할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이에 비상대책반은 기나긴 협상을 시작했다.

 

-테러범들 인도네시아인, 더욱 정확히는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을 원하는 말루쿠 출신이었다. 네덜란드는 한시적인 망명지에 불과했고, 말루쿠 독립운동은 시들해져 갔으며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말루쿠인들은 네덜란드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계층으로 지내야만 했다. 이런 불만은 테러로 이어졌다.

 

인질석방을 위해 매우 약한 식중독균을 삽입해, 아픈 학생들은 석방되었고 이들을 통해 학교 내부의 테러범 동선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열차의 경우 한밤중에 포복하여 열차 바닥에 도청장치를 설치하였고 인근 숲속에서 열상 장치가 배치되어 내부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였다.

 

전투기가 열차 인근 30M 상공에서 초저공비행을 실시하자 인질들은 모두 의자 아래로 몸을 숨기고 말았다. 잠시 테러범들이 상황을 확인하고자 자리에서 일어나자 저격수들이 테러범들을 정확히 사살했다.

같은시각 학교에서는 BBE 장갑차를 활용하여 학교벽을 뚫고 들어갔고 테러범들은 저항 한번 못하고 곧바로 투항하고 말았다.


2-13. 윈터 하베스트 작전 - 유럽 최고 사령관을 구출하라

도지어 장군을 납치한 붉은 여단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이탈리아의 극좌파 테러조직으로 이탈리아란 국가를 서서히 소멸시키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주도하는 마르크스적 대혁명으로 국가를 재건한다는 것이었다.

 

ㅡJSOC 감청팀 ISA UH-1 기체에 최신 주파수 스캐닝 무전기와 방향탐지 장비를 탑재하여 붉은여단이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 워키토키형 무전기의 통신내역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상에서는 유사한 장빌르 장착한 트럭이 도시를 활보하면서 신호정보를 수집했다.

 

이러한 감청작전은 엉뚱하게도 마피아들 간의 교신내용을 감청하여 이탈리아 경찰로 인계하였고 피해를 입은 마피아 보스들이 도지어 준장의 수색활동을 돕겠노라고 의사를 표현했다.

 

구이차 구역이 수상하다고 판단한 JSOC 팀은 이곳의 주택과 아파트의 전기 사용량을 일일이 체크했다. 최근 몇개월 급격하게 전기 사용량이 증가한 집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파트 인근에 사람이 많이 지나다닌다는 점을 활용하여 대낮에 과감한 인질 구출작전이 계획되었다. 대원들은 모두 작업복을 입고 공사인부로 변장했다. 기습으로 한발의 총격도 없이 도지어 중장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ㅇ 맺음말

우수한 특전요원을 하루아침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우수한 대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판단력을 갖춘 현장지휘관을 키우는 것이다.

 

특수부대의 능력은 대원들의 엄청난 체력이나 값비싼 최첨단 장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경험을 갖춘 '리더'에서 나온다.

리더는 단순히 팀장이나 중대장 장교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십년 근무하면서 특전팀을 지혜로 이끌어온 선임 준사관이나 부사관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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