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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8. 전투의 경제학>

by leeesssong 2020. 1. 27.

#8. 전투의 경제학

한줄평 - 합리적인 의사결정 도구로서 충분히 고민하고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분야

ㅇ서문

이질적인 두 분파로 갈라져 서로가 소가 닭 보듯 하는 또 분야가 바로 군사분야이다.

분파는 역사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장교나 전사 연구자들이 주요 구성원으로 군대의 지휘나 지휘관의 리더십 소프트한 교훈에 관심이 많다.

다른 분파는 기술공학적 원리에 기반을 엔지니어링적 관점으로 아마추어 무기 애호가들과 엔지니어들로 구성되며 무기의 제원이나 성능의 비교 하드한 팩트에 몰두하기를 즐긴다.

분파간의 대화는 흔하지 않으며, 서로 경원시하는 경향이 쉽게 발견된다.

 

과거의 방식을 답습한 고루한 장교단에 의해 희생된 많은 아까운 목숨들, 과거의 경험이나 두려움을 모르는 군인정신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좋은 무기를 가졌다고해서 무조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한가지만 잘하면 그걸로 족하다는 현대적 생각은 사실 섣부르다 못해 어설프기 짝기 없다. 이런 주장을 할까? 그래야 좁은 영역 내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지적 클론을 생산해내고 세력을 넓혀 안에서 권력을 휘두르는게 학계의 작동 방식이다.

 

군사의 문제는 결국 최선의 의사결정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경제학이 제공해주는 몇가지 관점은 그러한 의사결정에서 충분히 쓸모가 있다.

 


본문

 

1. 전투경제학 101

 

"Homo homini lupus(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다)" - 토머스 홉스, '시민에 대하여'

사람은 사람에게 유랑하는 늑대가 될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종의 신이 될수도 있다.

시민 공동체 내에서라면 사람은 서로 돕는 존재지만, 도시국가들 간에는 서로 싸우고 전쟁을 벌인다.

 

동종의 동물들끼리 싸우는 일은 극히 드물다. 물론 무리내에서 우두머리를 정할때라든지 무리간의 영역 다툼이 생긴 경우 싸움이 일어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서로를 죽게할 정도로 싸우는 일은 없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는 동물과는 무관한 인간에게만 고유한 일일 테다.

서양문명은 크게 보면 로마제국과 기독교라는 2개의 기둥에 의지하고 있는데, 로마의 역사는 시초부터 쌍둥이 동생의 피로 얼룩져 있고, 기독교 또한 카인과 아벨로 인해 형제 살해가 낯설지 않다.

 

전쟁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넓게 퍼져 있는 싸움이다.

전투는 전쟁에 비해 시간과 공간 모두 한정적이다.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치러지는 여러개의 전투들이 모여 결국은 하나의 전쟁을 구성한다.

전략은 전쟁을 해나가는 기술이고, 전술은 전투를 해나가는 기술이다.

Battle 전쟁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로서의 전투로 봐도 무방하다. 예로 영국본토항공전, 뤼순전투는 둘다 battle 해당한다하나의 battle 구성하는 보다 작은 규모의 전투들이 있을 것임을 짐작해볼수 있다. 이런 battle 내에서의 소규모 전투가 바로 combat 이다.

 

공격군이 요새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병력상 손실이 막대하다는 점에서 값비싼 승리, 이른바 '피루스의 승리' 거두웠다고 한다. 결국 전투의 결과를 가름하는 궁극의 변수는 부대가 입은 피해의 규모라고 얘기할 있다.

이를 통상 손실교환비라고 부르며, 공중전에서는 격추비율이라는 용어로 쓴다.

 

다시말해 전투의 승패를 가름하는 요소 중요한 것에 어떠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첫째, 병력의 , 둘째 병력의 , 그리고 셋째 지휘관의 능력, 전술이다.

물론 언급되지 않은 많은 기타 요소들이 있을수 있지만 계량화 일반화가 어렵기에 논의에서 배제한다.

 

우선 전투력의 차이가 중요하냐? 아니면 전투력의 비율이 중요하냐?

스파르타 중장보병의 전투력이 10이라면, 아테네와 같은 다른 도시국가의 중장보병의 전투력은 아마 8정도로 생각해볼만 하다.

한편 2 대전 독일 소총병의 전투력은 100이라 한다면 같은시기의 프랑스 소총병은 98정도라고 해보자.

차이가 중요하다면 상황 모두 1:1 결과는 같아야 한다. 둘다 2라는 전투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라는 차이보다는 0.98 이라고 하는 비율의 개념이 결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태의 관점으로 보면, 상대방을 죽이거나, 이상 싸울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히거나 혹은 도망가게 하거나 하면 이긴거다. 하지만 중요한 사항은 바로 시간이다.이긴다는 결론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이기는데 걸리는 시간을 명확히 해야한다.

 

달리 말하자면 단위시간당 우리 부대가 입는 손실은 상대방 부대의 전투력을 상징하는 하나의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 부대의 단위시간당 손실 또한 우리 부대의 전투력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2. 선과 선이 대결하는 근접육탄전의 경제학

 

보통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비교해서 스파르타는 전제군주 체제하의 무식한 병영국가인 반면, 아테네는 문화적으로 융성한 민주주의 체제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스파르타에는 2명의 왕과 별도의 5명의 에포르라는 집정관이 있었다. 아테네 집정관인 아르콘과 별로 다를바가 없었다. 중요한 국가적 정책은 최종적으로 전체 시민권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됐다. 이쯤되면 아테네의 체제와 별로 다를바가 없다.

그뿐 아니라 당시의 민주주의는 사실 불완전하기 짝이 없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남자들만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수 있었고 여자들은 철저하게 권리를 부인당했으며, 노예를 부렸고, 주변 도시국가에 대해서는 억압적인 모습을 보인게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제였다. 또한 아테네에서 여자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없었고, 탓에 대부분 문맹이며 법적으로도 재산보유 처분에 적지 않은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여자들은 남자들과 거의 동일한 교육을 받았으며 글을 읽을줄 알고 재산보유에 제약이 없었다.

스파르타가 대외적으로는 억압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대내적으로는 민주적이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문득 그리스와 우리나라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버거운 상대로부터 줄곧 침공당해왔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중립을 선언할지언정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배후에서 페르시아 편을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백제는 중립을 지킨 전쟁에서 신라는 영토를 뺏겠다고 고구려 후방을 공격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런가?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전체 병력 7000명은 제국 페르시아의 20만명을 저지해야만 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영화 300 모티브 / 스파르타 정예부대 300 + 노예부대 + 기타 도시국가 등등 합쳐서 7000)

 

근접육탄전을 벌일때 병력배치가 어떤식으로 이뤄질까?

역사적으로 보면 양쪽부대 모두 가능한 넓게 서려고 해왔던 것을 있다. 종심이 얇아지더라도 폭을 최대한 늘리려고 했다근접육탄전은 선대 선으로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에 부대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려면 선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야 하고, 횡대의 폭이 부대보다 짧으면 아군 부대가 포위를 당할 있고 나아가 배후가 차단될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 입장에서 죽기만큼 싫은 것이 바로 포위당하는 거다.

한쪽이 5~10%정도의 병력을 잃으면 전의를 잃고 후퇴하는 경우가 다반사며, 또한 30%정도를 잃으면 완전히 와해되거나 항복해왔다.

 

Ex) 백군 병력 100, 전투력 상수 4 / 흑군 병력 150, 전투력 상수 3 

이론적으로 끝까지 간다고 가정한다면, 33분이 지났을시 백군은 3 x 33 = 99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흑군은 4 x 33 = 132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처음에는 병력비가 100:150이었던 것이 33분후에는 1:18, 34분후에는 0:17 바뀌게 된다.

이를 하나의 식으로 표현한다면

dWhite = - βdt / dBlack = -ωdt 미분방정식으로 푼다면 (W,B 병력, β,ω는 전투력상수)

=> W(t) = W(0) - βt / B(t) = B(0) - ωt 에서 t 대해 정리하여 대입하면

=> ω(W(t)-W(0)) = β(B(t)-B(0)) 라는 식을 얻게 된다.

시간에 따른 백군과 흑군의 병력이 서로 1 함수 혹은 선형 함수의 형태로 주어져 있음을 확인할 있다. 의미는 간단하다. 백군의 사상자 수에 백군의 전투력을 곱한 값은 흑군의 사상자수에 흑군의 전투력을 곱한 값과 서로 같다는 뜻이다.

달리 이해하면 아군의 전투력이 올라갈수록 그에 반비례해서 아군의 사상자가 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백군의 총공격력은 ωW(0), 흑군은 βB(0)이다.

그래서 백군 4 X 100 < 흑군 3 X 150 으로 흑군이 이긴다는 것을 확인할 있다.

결과값을 란체스터의 선형 법칙이라 불린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보통은 동양의 전제주의로부터 서양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서구 중심주의적인 사고 방식이다. 사실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이런관점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세계관만이 타당하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전투가 벌어지는 테르모필라이 지역이 좁았고, 지역의 폭이 좁을수록 병력의 절대적인 수는 의미를 잃는다.

 

당시 스파르타의 완전한 시민권자만이 스파르타군의 '호플리테' 될수 있고, 비시민 자유인인 페리오이코이들은 별도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팔랑크스내의 보병들이 적진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마치 손가락처럼 생겨서 팔랑크스라고 부른다. 보편적인 대형은 8 8, 상황에 따라 2 32, 4 16행으로 서기도 하였다.

팔랑크스 내에서 오른쪽의 보호는 바로 오른편의 동사의 호플론이 제공해 줄수 있다. 그래서 병사들이 자신의 오른쪽에 서있는 병사의 방패에 의지하게 되면, 아무래도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전진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왼손으로는 방패를, 오른손으로는 장창을 것도 그러한 경향에 일조한다. 이에 정예 병력을 가장 우측에 배치하는 일도 흔했다.

 

테베군 VS 스파르타인 레욱트라 전투에서 테베의 에파미논다스는 전투력과 병력상으로도 열세였다. 하지만 자신의 부대의 우익과 중위의 병력을 , 좌익에 위치한 팔랑크스의 종심을 50행으로 늘렸다. 한마디로 비정상적으로 두텁게 편성한 거였다.

어차피 병력도 모자라고 전투력도 앞서기 힘드니, 스파르타군의 우익을 증강된 자식의 좌익으로 무너뜨림으로써 승기를 잡자는 전술이었다.

스파르타군 우익의 최정예 팔랑크스는 테베군 좌익의 팔랑크스와 충돌하자마자 뭔가 밀린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자기네 뒤에서 8~12 정도의 사람들이 밀뿐인데, 테베군의 50행의 사람들이 몸무게로 밀어대니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3. 점과 점이 싸우는 원거리 사격전의 경제학

 

방어력과 기동력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방어력을 높이게 되면 공격이나 기동에 제한이 생기고,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병거나 기병을 사용하면 지형이나 작전지속지원의 제한이 있었다. 이는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키거나 포기해야한다는 경제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얘기다.

 

궁병이 공격받지 않으면서 공격할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지만 보병에게 근접전을 허용하게 되면 일방적인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궁병들은 대게 보조 무장으로 칼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경제의 문제에서 둘다 가질 없듯이, 궁병이 아무리 칼을 들었다 하더라도 육탄전으로 단련된 보병과 맞설 실력은 못됐다. 그래서 전체 부대에서 궁병이 차지하는 비율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1346 크레시 전투는 영국의 평민 장궁병으로 프랑스 귀족 중장기병을 패퇴시킨 전투라고 일컬어진다. 프랑스의 중장기병은 돌격을 하였지만 장궁의 위력이 쇠뇌(크로스보우) 이상이라는 생각지 못하였고, 장궁의 화살은 갑옷의 약한 부분을 충분히 관통하고, 타고 있는 말들도 쉽게 쓰러뜨렸다. 이렇게 중장기병의 시대가 저물어갔다.

이후 영어로 아퀴버스나 머스킷, 우리말로 화승총 혹은 조총이라고 불리는 무기가 활과 같은 기존의 원거리 사격무기와 다른 원리로 작동되었다. 바로 재료의 탄성에너지가 아니라 화약의 폭발에너지를 이용해 전장식으로 쇠구슬을 장전하고 이를 빠른 속도로 발사하는 원리였다. 화승총은 장궁은 물론이거니와 쇠뇌보다도 배우기 훨씬 쉬웠고 위력도 강했다.

 

궁극적으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이유는 운동에너지에 기인한다.

통상 200J 정도가 되면 사람에게 치명상을 가할 있다. 이는 야구공이 190km/h(시속) 날아갈때에 해당한다.

화승총은 대략 57그램의 질량에 초속 250m 총구속도를 가정하면 1700J 해당하고 활은 54g, 초속 65m 초기 발사속도를 가정하면 110J 약간 넘는데 그친다. 물론 화살과 쇠구슬의 공기역학적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조금 감안할 필요는 있다.

 

군대가면 훈련받게 되는 낮은 포복훈련은 바로 1 세계대전의 유산이다. 철조망 밑으로 기기라도 해야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다. 1914 가을 철조망 + 참호 + 기관총의 3종세트로 구성된 방어전선을 돌파하려면 뭔가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철조망과 참호를 문제없이 건널수 있고, 또한 총탄을 튕겨낼 있을 정도의 장갑을 갖춘 육상의 장갑전투함, 이른바 육상함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고 지지한 핵심적인 인물은 당시 영국의 해군장관인 윈스턴 처칠이다. 그렇게 영국의 전차 '마크' 시리즈는 1916 전투에 모습을 드러냈다.

 

ㅡ1 대전에서 전차의 적은 적군의 철조망 참호 진지였고 빠른속도나 민첩한 기동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영국 기갑전의 아버지 풀러는 빠른속도와 기동력을 바탕으로 보병에게 충격을 가할 있는 순항전차라는 개념을 구상하고, 나폴레옹을 우상시하여 포병 지상주의자로서 그의 전차 사상은 자주포대의 교리에 가까웠다.

이러한 혁신적인 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1차대전 패전국 독일이었다.

1 대전의 교훈을 살려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기동전을 구상했고, 갖고 있지 못한 전차를 대신하여 자전거로 훈련을 하며 준비를 다졌다. 1933 히틀러 집권과 동시에 새로운 전차개발, 1939 9 2차대전 개전시까지 4종류의 전차를 장비했다.

 

독일의 남달랐던 점은 전차의 성능 자체가 아니라 전차를 운용하는 방식이었다.

영국의 순항전차는 기껏해야 대대급의 전술적 공세를 염두에 반면, 독일의 전격전에서 전차는 강력히 저항하는 적의 방어진지를 상대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우회하여 후방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고 고정된 진지는 후속하는 보병이 처리하는 것이었다.

 

서양에서 화염병을 보통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부르는데, 몰로토프는 2차대전 당시 소련 외무상의 성이다.

소련과 핀란드가 벌인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폭탄을 투하해놓고 서방세계에 "구호 식량을 투하했다" 주장하자,

유머에 강한 핀란드인들이 "그럼 술병이나 받아라"하며 휘발유가 가득 불붙은 술병을 소련군 전차에 던진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로 인해 전차의 엔진을 불이 붙지 않는 디젤엔진으로 모조리 바뀌게 되었다.

 

원거리 사격전에서는 단위시간당 뿐만 아니라 '단위요소당' 상대방에게 끼칠 있는 손실의 크기가 전투력의 상수가 된다. '1(단위시간) 흑군의 전차 1(단위요소) 격파하는 백군의 전차수량' 전투력의 예가 될수있다.

 

Ex) 백군 전차 100 전투력 0.04 / 흑군 전차 150 전투력 0.03이라 가정하자.(상대적인 비율이다.)

이때는 흑군의 피해는 30% 조금 넘고 백군은 전멸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까 근접육탄전은 흑군이 90% 가까운 병력 손실을 입고서야 백군을 전멸시킨 상황과는 결과가 확연하게 다르다.

백군의 전투력 상수를 0.05 올려보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흑군의 피해가 50% 늘어났다는 것을 제외하고.

 

한마디로 원거리 사격전은 근접육탄전보다 병력 수의 중요성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ω(W(t)2-W(0)2) = β(B(t)2-B(0)2) 이라는 란체스터의 제곱법칙 탄생한다.

병력이 적군의 1/2 불과하다면 최소 비기기 위한 전투력은 2배가 아니라 4 커야하며, 병력이 적군의 1/3이라면 전투력은 역수의 제곱인 9 이상이 되어야 한다.

 

Ex) 스타크래프트 드라군 1부대(12마리) 드라군 6마리의 싸움을 생각하면 드라군 1부대가 승리하면서 6마리만 살아남지 않고 8~9마리 이상이 살아남게 된다.

 

원거리 사격전에서 총전투력이 병력의 제곱에 비례한다 하여 제곱법칙이라고 부르며, 란체스터는 소총

병이나 전차가 아닌 전투기들간의 공중전을 염두하여 법칙을 만들었다.

따라서 현대전에서는 각각의 개별 전투를 치를때 가능한한 병력을 최대한 집중시켜야 한다는 뜻이 된다.

(밀집하라는 얘기가 아님)

 


4. 점이 면적으로 바뀌는 포격전의 경제학

유명한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그림은 사실 정치적 선전을 목적으로 과장의 산물이다.

실제로는 백마가 아니라 볼품없는 노새를 타고 넘었다.

또한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나폴레옹이 유명한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사실과 다르다.

굳이 찾자면 휘하 장군이 "그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라고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한 답장으로 "그런 말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고 했던게 전부이다.

 

ㅡ' 그랑 아르메(위대한 육군)' 이라는 프랑스 국민군의 승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징병제를 통해 유럽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있을 정도의 충분한 병력을 확보했다. 그리고 병사들 또한 '위대한 국가 프랑스'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다. 전쟁에서 놀라운 승리를 가져오는 나폴레옹의 지휘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도 여기에 한몫했다.

게다가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 신분에 관계없이 승진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군의 장군들과 장교들 상당수는 귀족이 아닌 평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에콜 폴리테크닉은 프랑스 제일의 군사학교로 졸업생들이 포병장교가 되었으니 똑똑함 면에서 이들을 당해낼

포병 부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엘리트들로 구성된 탓인지 전술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전반적으로 부족한게 프랑스 포병의 특징이기도 했다. 포병의 하위 제대가 자율권을 갖고 있지 못한 탓에 보병과의 유기적 협동 능력은 갈수록 퇴보하게 되었다.

 

프랑스 포병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포병은 바로 독일 포병이다. 독일 포병장교들은 전문적 수학지식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은 아니였지만 오랜 군생활을 통해 언제 어디를 공격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아는 군인이었다. 하위 제대의 독자적인 판단을 언제나 중시하고 현장 하급 지휘관의 즉흥적이고 유연한 지휘를 제한하면 안된다는 독일군 고유의 사상이 독일 포병에서도 나타났다.

 

미국 포병은 프랑스의 사상과 교리를 그대로 채용했는데, 문제점을 깨닫고 나중에 독일 방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바람에 퓨전이 되어버렸다. 미국 포병은 무시무시한 화력 집중과 물량전의 대가로서, 깔끔함을 추구하는 독일포병이

꺼려하는 이른바 준비사격도 즐겨했다. 이는 '벤플리트 탄약량'에서 드러난다.

 

포격전은 원거리 사격전과 동일할까?

포격전에서 아군의 손실이 아군 병력에 비례하는 이유는 바로 포탄의 살상 원리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명중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해칠 있다.

수식으로 정리한다면 dWhite = - βBWdt / dBlack = -ωWBdt 나오며 이는 단위 시간당 백군의 손실규모는 흑군의 전투력 상수, 흑군의 병력, 그리고 백군의 병력 세가지 모두에 비례한다는 뜻이 된다.

약간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백군의 수량이 많을수록 백군의 손실이 그에 따라 커진다는 얘기다.

(정리하여 식이 복잡하여 생략, 하지만 식을 정리하면 결국)

ω(W(t)-W(0)) = β(B(t)-B(0))라는 결과가 나오고 이는 근접육탄전에 얻었던 식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니까 근접육탄전과 포격전의 전투력은 초기 병력 자체에 비례하고 원거리 사격전의 총전투력은 초기 병력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정리할 있다.

 

근접육탄전에 대한 수학적 법칙은 '란체스터 1선형법칙' ,

포격전은 '란스터 2선형법칙',

원거리 사격전은 '란체스터 제곱법칙'이라고 부른다.

 


5. 전투에서의 결정론 vs , 그리고 병력 vs전투력

 

실제로 이러한 가정이 정당화될수 있을까? 일련의 란체스터 법칙이 실제의 전투에서 성립하냐는 질문이다.

이에 관해 유명한 사례가 있다. 1945 해병과 일본군사이에 치뤄진 이오지마 전투이다.

 

이오지마의 일본군은 구리바야시의 지휘 하에 끝까지 끈질기게 미군을 괴롭혔고, 미군은 결국 35일이나 걸려서야 섬을 점령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항복하여 포로로 잡힌 216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일본군 2 1284명은 사망했지만 놀라운 점은 미군이 일본군보다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사상자수는 26038명이었다. 당초 3.4배에 달하는 우세한 병력을 갖고도 일본군보다 22% 손실을 입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전투결과와 비교했을때, 놀라울 정도로 이론적 결과가 실제와 흡사하다. 이러한 결과가 알려진 란체스터 법칙은 검증된 이론으로서 남다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전투들에 대해 검증을 해봤더니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더라는게 고민거리다.

실제의 전투에서 란체스터 이론이 완벽하게 성립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실제의 전투는 여러가지 성격의 전투가 섞여서 나타나기 때문에, 전투력이 병력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통계적 결과가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인것이다.

 

운이 전투에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

 

Ex) 백군 10대의 전투기, 전투력은 0.4 / 흑군 15대의 전투기, 전투력은 0.3

운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결정론적 란체스터 제곱법칙이 성립하다면 흑군이 승리하는 결과가 나온다.

반면 운이 개입한다면 흑군 전투기들에게 유리하게 운이 작용하여 본인들은 1대만 격추되면서 10대의 백군 전투기를 모조리 격추시켰다. 전혀 상반된 결과가 모두 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에서는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한 분포 자체에 관심을 갖고 이를 미리 파악해야하고, 전투 결과에 대한 확보된 분포를 갖고 여러가지로 분석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질때 얼마나 크게 있는지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가 것이다.

 

그래서 가령, 이길 확률과 확률이 반반인 전투에 대해 운에만 맡기고 전투를 결정하는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운의 영향은 전투에 참가하는 병력의 수가 작을수록 확연하게 나타나기 쉽다.

가령 15000 vs 1만명 간의 전투라면 확률적 란체스터 법칙의 결과가 결정론적 란체스터 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을 있다.

 

병력이 전투력보다 낫다는 얘기를 있다. 병력은 총전투력에 제곱으로 반영되는 반면, 전투력은 전투력에 선형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병력의 증대가 전투력의 증대보다 효과적이라는 결론은 유효하다.

380여개에 이르는 역사상의 주요 전쟁들을 대상으로 분석해보니,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가진 상대방을 이긴 경우는 고작 15% 불과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이 있기에 결국 병력과 전투력 뭐가 중요하냐는 우문에 현답을 하자면, 병력과 전투력 둘다 중요하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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