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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52. 그대 있기에 조국이 있다(채명신 회고록)>

by leeesssong 2020. 5. 4.

한줄평 - <베트남전쟁과 나>의 요약본, 지휘관으로서 용장이자 지장이면서 군사외교관 역할까지


ㅇ서론

 

ㅡ "강대국 미국이 약소국 베트남을 침략하기 위한 전쟁에 한국군이 말려들어야 했는가?"

라는 대목에서 분노가 치밀었고 순간 회고록 집필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국군의 참전은 대한민국 역사에 결코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는 당위성을

후대에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베트남전의 참전을 통해 대한민국이 성장발전할 있었음을

고해하는 심정으로 증언하고 싶었다.


ㅇ본론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혁명정부가 수립되고 박장군을 따르는 육사 8기생들과

이북 출신이 대부분인 5기생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가 있었다.

결국 주도권 싸움에서 5기생은 완패당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와중에 내가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정치적 야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부대 파월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국회에서는 활발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국군의 현대화 촉진 국방력 증강, 실전역량 내외과시 국위선양, 월남 전선은 2 대공 전선,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의 은혜에 보답, 경제발전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며 해외 인력 송출 활발 등의

찬성론과 미국의 용병, 청부전쟁의 반대론이 뒤섞였다.

 

국가와 군 그리고 국제적 신의를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여론이 찬성쪽으로 기울었고,

만일 우리가 전투부대를 파병하지 않는다면 미 2사단과 7사단이 빠져나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보다 절대 우세한 북한군의 침략을 막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양민학살'이란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수 민간인을 계획적으로 살해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유태인 학살, 남경 대학살을 있다.

 

베트남전에서 민간인의 희생을 부인하지 않는다. 때로는 순수 민간인이 살해될 수도 있다.

그것이 전쟁이다. 특히 지방 베트콩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양각색으로 구성되어 있어

민간인과 군인의 구분조차 어려웠다.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서 베트남전에서 적의 정체와 전략전술 그리고 베트콩을 지원하고 있는

배후에 대해 분석하고, 프랑스군의 참패원인과 월남인들의 항쟁 의지를 알면 알수록 암담하였다.

 

군부를 비롯한 지도층의 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걸핏하면 군사 쿠데타로 권력싸움이 이어지고 있어

월남이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의 지원이 있어도 버텨나갈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승리가 불확실한 전장에 뛰어드는 장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ㅡ '전쟁 지역의 작전부대 요구는 무조건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미군의 방침은

전쟁을 위해서 존재하는 군대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그토록 진지하게 그리고 즉각 실천하는 미군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ㅡ "한국군의 독자적인 지휘권은 한미 양국에 이익을 가져다 것이며,

한국 국민과 한국군의 명예와 사기에 영향을 아니라, 청부전쟁, 용병 운운하는

모략선전을 봉쇄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장성들앞에서 얘기하였다.

 

중대전술기지

1)방어에 필요한 모든 보급품은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는 양을 확보

2)적의 박격포에 대비, 강력한 진지를 구축

3)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경계시스템 전제

4)야간 통신수단에 대한 대책

5)포병 지원으로 보호

 

베트남 전쟁은 다른 전쟁과 다르다.

이런 전장에서 탐색 섬멸(Search & Destroy) 작전을 위주로 하는 미군에 성과가 있을리가 없다.

이는 군사작전의 관점에서 아니라 정치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ㅡ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 전략

이것은 군사작전의 슬로건이 아니라 정치적인 슬로건이었고 2가지 효과가 있었다.

1) 양민과 베트콩을 분리시키는 가장 좋은 방책

2) 양민 보호를 강조함으로써 양민의 피해를 적극 줄여나감

 

철모를 한국군이 노인을 만나면 철모까지 벗으며 인사하거나 치료소를 설치해

환자를 치료해주니 더욱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군이 베트남어를 배우고 말하는 것을 월남사람들은 닫혔던 마음을 열었다.

 

ㅡ "전쟁수행에 기본이 되는 군사정책, 정치외교, 경제적 측면 가치있는 정보는 군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에도 반영될 있으므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다.

술이나 마시고 잡담이나 하는 파티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공식파티에 대한 언급

 

ㅡ<시카고 트리뷴> 체스리 맨리

"… 한국의 전술교리는 미국 교리에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독자적인 전술교리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정보는 한국군을 승리로 이끌게 하는 이유중 하나다.

또하나의 성공 사유는 베트콩이 하는 것처럼 한국군도 야간에 전투한다…

한국군 전술과 미군 전술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적이 도주하기전에 즉각 공격한다.

미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뒤로 물러나 포병 지원사격을 요청하거나 공중폭격을 요청한다.

다음 공격을 하게 되면 적은 자취를 감춘다…"

 

국군포로와 실종조가 거의 없었던 것은 철저한 전우애의 발로에서 기인한 것이다.

전우의 시체나 부상병을 적지에 두고 오는 경우는 없었다.

 

어느 나라 군대라 할지라도 경험없이 잘 싸울 수 없다.

시행착오를 무시하고 상대편에 원인을 전가한다면 군대는 강해질 수 없다.


ㅇ결론

 

한국경제에 숨통을 있는길이 베트남 파병이었다.

경제적 이유 외에 파병의 당위선은 긴박했다.

미군철수에 따른 안보공백, 군원 이관에 따른 전투장비의 노후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또한 전쟁특수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 중 외환위기를 극복 있었다.

또한 한국군의 용맹이 전세계에 보도되자

국가신용도가 상승하였고, 공공차관과 사업차관, 경제성장률 또한 상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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