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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47.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

by leeesssong 2020. 4. 26.

한줄평 - 아랍국가와 이스라엘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풍부한 경험! 과연 우리는 이스라엘과 비교했을때 어떠한가?

우리는 과연 '힘찬 연어'가 될 역량을 갖추었는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때인 것 같다.


ㅇ서문

ㅡ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70년간 나라 국정을 운영한 총리들의 75%가 군 또는 첩보부를 거쳐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군인들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산업을 비롯해 외교인문사회학계까지 두루 포진해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나라 군대를 먼저 알아야 한다

ㅡ 이스라엘은 한국과 다른게 참 많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듯,

다른 나라의 사례도 우리나라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스라엘은 적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미국, 러시아, 중국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외교의 달인이자 군사강국이다.


ㅇ본문

1장. 이스라엘 군대의 혁신

천재 자폐증 병사들이 활약하는 9900부대

-"계급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는 군문화 덕에 적응하기 쉬웠다.

나도 쓸모 있는 존재구나 라고 느껴져 애국심도 생겼다"

나탄 일병은 상당히 중요한 영상정보를 여러분 분석해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정보부 관계자는 "이스라엘군의 정책 결정자들은 유연하고 개방적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결코 사장하지 않고 적극 도입한다. 자폐증 환자의 입대 제도도 그 덕분에 마련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게 한다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여성 전투부대원들

"나를 비롯한 모든 여성 훈련병은 남성 훈련병과 동등한 조건으로 훈련하길 원했다."

이스라엘 여군의 역사는 국가의 역사보다 길다.

건국 전후로 여군은 의무병이나 수송병뿐 아니라 전투병으로서도 큰 활약을 했다.

명문대보다 들어가기 힘든 8200부대

8200부대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도 전인 1930년대에 창설되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창설 70년이 지난 2000년대에 비로소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보임무부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택한 전략은 군의 교육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부대에 들어가면 국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청년들에게 심어줬다.

실제로 8200부대는 부대원들에게 첨단 컴퓨터 통신 프로그램을 가르쳤다.

ㅡ 군대속의 멘사클럽 탈피오트

과학영재를 선발하고 육성해 군정보부 등 국가 기관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이스라엘 제도를 '탈피오트' 라고 한다.

탈피오트의 회원이 되는 것은 멘사에 들어가기보다 까다롭다. 머리만 좋아선 안되고, 집중력, 체력 등이 요구된다.

탈피오트 군인은 입대와 동시에 예루살렘의 히브리대 자연과학대에 입학해 학사 4년의 교육을 압축해 3년간 받는다.

이들은 군복을 입고 수업을 들으며 방학기간에는 군사훈련을 받는다.

졸업하면 이학학사 학위를 받고 중위로 임관하게 된다.

적성에 따라 사이버 첩보부대인 8200부대 등 군 핵심부대나 모사드 등으로 배속돼 최소 5년간 복무한다.

ㅡ 19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정보전과 무기경쟁에서 이집트에 패할뻔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뒤,

탈피오트 제도가 제안되었다. 제안서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스라엘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혁신 무기를 만들어야만 한다.

자연과학과 무기 기본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서도 헌신할 각오가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군에 기여할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군은 과학 영재들을 선발해 특별히 관리하여 무기 개발자와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다.

셋째, 탈피오트 입대자는 고등학생 졸업생이다.

군인신분으로 히브리대학 자연과학부에 입학시켜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교육을 받도록 한다.

ㅡ 외국교민자녀의 스카우트 전략

4차 중동전쟁시, 이집트 영공에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전투기 조종사의 무전을 잡았다고 한다.

당시 북한은 조종사를 파견해 이집트와 시리아군을 훈련시키고, 직접 전투기를 출동시켜 이스라엘과 맞붙었다.

"빈틈없는 감청능력을 갖추기 위해 해당 언어권 외국인을 입대시키겠다는 것은 이스라엘군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한국인 병장 다니엘윤은 한국 대사관 등을 감청하거나 통역, 번역 관련 임무를 맡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ㅡ 이스라엘은 예비군의 헌신에 국민이 감사하는 풍토를 형성하는데 힘썼다.

주요 언론에 소개하여 사회적 귀감이 되도록 유도했다.

예비군들 자신도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 위기의식과 이스라엘 군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사이버스파크(Cyber's Park)는 스타트업과 대학 그리고 이스라엘군이 '삼위일체'가 된 공간이다.

군, 대학, 스타트업이 각자의 장점을 서로 돕고 상대의 약점을 보완해 큰 성과를 내고 있다.

ㅡ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하레디 부대

병역을 거부할 이유를 군대에 들어갈 이유로 만들며, 군대와 병역거부자 사이의 생상전략을 활용했다.


2장. 이스라엘의 핵개발과 예방전쟁

ㅡ 이스라엘의 핵전략은 '핵모호성(Nuclear Ambiguity)'으로 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에 머무름으로써

적국의 공격의지를 억제하는 동시에 비핵보유국의 혜택도 챙길 수 있다.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국제기구의 확인을 받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나라에게 '이스라엘은 핵 무기가 있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야 가능한 전략이다.

ㅡ 예방전쟁 1, 이라크 핵시설 파괴한 오페라 작전

1981년 6월 7일, F-16 전투기 8대와 F-15전폭기 6대가 출격,

이스라엘 공군 편대는 요르단 영공을 가로질러 사우디로 넘어갔다.

사전에 파악한 주파수와 용어를 통해 요르단 측에는 사우디 인척,

사우디 측에는 요르단 공군인척 하며 순조롭게 오시라크 시설로 접근했다.

작전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높아져갔으나 이스라엘은 인명피해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악명 높은 후세인을 어찌 믿을 수 있느냐"며 오시라크 시설을 파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ㅡ 베긴 총리는 "우리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을 선택했습니다. 나중은 너무 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영원히 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안보정책은 그의 이름을 따 <베긴 독트린(Begin Doctrine)>이라 불리게 되었다.

ㅡ 예방전쟁 2, 시리아 핵시설 파괴한 과수원 작전

2004년 북한 북서부 중국 접경지이자 신의주 남쪽 외곽인 평양북도 룡천역에서 화물 열차가 폭발했다.

사건의 초점이 김정일 암살 시도에 맞춰져 있는 사이 폭발현장에서는 방호복을 입고 화학물질과

장비를 실은 화물칸을 수거하는 모습이 중계되었다.

여기에 시리아 과학자 '특별손님' 12명이 탑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사건은 김정일 암살이 아니라 바로 시리아 과학자 방문단을 노린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ㅡ 2007년 F-15I 라암 전폭기들은 하루전 알키바르에 잠입해 대기하던 이스라엘 특수부대

샬다그 요원들의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통해 차례로 폭격을 가했고 알키바르 원자로가 파괴됐다.


3장. 자주국방 전략

ㅡ 이스라엘의 강철지붕, 아이언 돔

흔히 이스라엘군은 경직되지 않은 조직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이언돔 개발도 의견일치로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이들은 상관 앞에서도 다리를 꼬고 앉거나 대화를 편하게 한다.

문서 결제 단계를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절차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도 다른나라 군과 마찬가지로 조직문화와 관료주의가 존재한다.

허가를 받으려면 보고를 거쳐야 하고 자신을 견제하는 다른 인사들의 날 선 비판과 방해를 견뎌내야 한다.

동시에 장관 등 정책 결정권자를 어떻게든 설득하는 등 일종의 로비 작업도 해야 한다.

ㅡ 자동차보다 전차를 먼저 만들다, 메르카바

이스라엘은 국산 자동차가 없지만 국산 전차는 있다.

대다수의 전차는 엔진이 차체의 뒤편에 있는 것이 정석인데, 메르카바는 엔진을 차채 맨 앞에 장착했다.

전차간 전투에서 포격피해가 전차 앞면에 몰려있다는 사실, 이로인해 앞에 탑승한 조종수의 사상 비율이 높다는 사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엔진을 전방에 배치해, 공격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도록 했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선 군인 한명의 목숨이 전차보다 귀했고, '양보다는 질로 승부한다',

일당백의 군인이 돼야한다며 병사마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도록 하고 전차조종도 어느 군보다 능숙하게 훈련시켰다.

엔진의 전방배치는 전차 뒤편 공간이 넓어지면서 포탄, 병력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었고,

부상자 후송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상단이 아닌 후면으로 탑승과 하차가 가능하면서 적의 공격에 덜 노출된다는 이점도 생겼다.

ㅡ 국산 전투기 개발에 도전하다, 라비

ㅡ 최초의 자국 인공위성, 오페크

위성개발은 정찰위성으로 첩보력을 키움과 동시에 탄도미사일의 개발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았다.

오페크 10호에는 합성개구레이더(SAR)가 부착되어 날씨에 상관없이 24시간 다른 나라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ㅡ 미국도 놀란 이스라엘 무인기, 스카우트

1960년대까지 드론은 훈련용 표적물이나 적의 지대공 미사일을 유인하는 미끼, 간헐적으로 공격용으로 쓰였다.

처음에는 장난감 비행기를 이용해 테스트를 하였고,

4차 중동전쟁 이후 1979년 이스라엘 드론 정찰기 '스카우트'가 탄생했다.

스카우트는 1982년 레바논 전쟁에 실전투입됐고, 수차례 레바논의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 위치를 파악했으며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전자파로 마비도 시켰다.

이로 인해 정찰 드론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미국은 스카우트를 업그레이드한 파이오니어를 개발하며 91년 걸프전에 투입하였다.


4장. 이스라엘은 영웅을 잊지 않는다.

ㅡ 예루살렘과 평양 사이, 미사일과 금광거래 비밀 협상

북한이 운산 금광개발에 10억달라를 투자해달라고 했으니 이를 들어주는 대가로

대중동 무기 수출 중단여부를 협상하려했다.

북한은 리비아, 이란, 시리아 등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중동 국가에

탄도미사일 노동1호를 포함한 대량의 무기를 팔고 있었다.

ㅡ 역사의식의 인큐베이터, 야드바셈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추모단지 야드바셈은 '지위를 막론하고 어느나라의 사절이든

이스라엘 방문이 처음이라면 반드시 야드바셈에 간다'는 외교의례가 의무화되어 있다.

역사는 국민의 정체성이다.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국민 사이에 통일된 역사의식을 가지는 것, 이스라엘은 여러국가에 살던 유대인이

단기간에 모여들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서로다른 역사관을 갖지 않도록

학교부터 군대, 직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로로 역사교육을 반복한다.


ㅇ 결문

이스라엘에겐 보수적인 조직문화라는 거센 강물을 거스르며

어떻게든 목적지로 가려는 '언어'가 여럿 있었다는 점이다.

설사 내가 불이익을 받더라도 어렵게 세운 유대인의 나라를 지키고,

제2의 홀로코스틑 겪게 하지 않겠다며 헌신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연어들이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들보다 더 절박해서 더 얻어냈고, 또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ㅡ 미국이 아무리 최우방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국익을 자기것처럼 책임지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강대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주 국방력을 기르는 절묘한 균형감각의 외교안보전략을 택했다.

ㅡ 이스라엘군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70년간 잦은 전쟁을 치르며

강력하고 헌신적인 군대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

그 국민이 군을 신뢰했고, 그렇기에 군에서 정치인이 수없이 배출돼도 군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다.

국민이 군인을 존경하고 군인이 스스로 군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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