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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색다른 자극 & 새로운 도전 & 다양한 경험)/독서 일지(인문, 사회, 경제, 과학 등)

<#15.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by leeesssong 2020. 8. 23.

ㅇ서론

 

어떤 요인이 나폴레옹을 패망으로 이끌었을까?

1789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병력 자원이 고갈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겠지만, 영국이 압도적인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무시할  없다.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어기고 영국편에 선것도, 스페인이 영국군을 지원하며 게릴라전을 펼친것도


ㅇ본론

 

1.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전열함(ship of the line)이란 일렬로 늘어서서 상대를 향해 포격을 가할  있게 만든 전투함이었다. 

당시에는 배에 포를 장착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갑판위에 대포를 올려놓고 쏘면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있지만, 균형이 깨져 배가 전복될 위험이 있다.

 

대포가 흘수선에 위치하도록 선체 내부에 두고 포를 발사해야되고, 선체 양면에 방수처리를  포문을 내야 하며, 포탄이 발사될때 생기는 강한 반동의 힘을  처리해야 한다.

 

영국은 어떻게 불패의 해군을 육성할  있었을까?

1688 영국의 명예혁명에 주목한다. 

윌리엄 3세는 자신의 사람들과 더불어 네덜란드 사고방식과 금융제도까지 영국에 들여온 것이다. 

영국 국채금리는 10%에서 6% 떨어지고 1755 2.74%까지 기록해 어떤 경쟁국가도 꿈꿀  없었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있게 되었다.

 

군대는 강했지만 경제는 허약했던 스페인

스페인은 해외에서 유입된 은과 금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화페 공급량이 늘어난 만큼 생산능력이 받쳐준다면 문제 없으나, 한계가 있다면 늘어난 통화량으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때 금리를 인상시켜야 하나 당시 스페인은 중앙은행이 없었고, 더욱이 통화긴축은 커녕 대규모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장기간의 대규모 전쟁으로 재정부담, 생산업무에 종사해야할 젊은 남성들이 전쟁터에 투입되면서 생산능력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경제호황과 인구증가가 동반된다.


화폐환상(Money illusion)이란 임금이나 소득의 실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았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자신의 임금이나 소득이 늘어났다고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프랑스는 2인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돈이 없고 신용도가 바닥 수준이었던 탓이 가장 크다. 

프랑스 왕실은 1559 ~ 1788 수차례 채무의 전부 혹은 일부를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거대한 부채에 허덕인건 '전쟁'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독립전쟁에 참여하는데 많은 돈을 쓰고, 부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ㅡ 결론 : 투자의 영역에서 '금리가 높은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2.  대항해시대로 열린 '글로벌 경제'

 

증기선과 무선전신  기술혁신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동서양의 금은 교환비율에는 여전히  차이가 존재했다.

 

인구가 늘어나는 일은 '초기'에는 좋은 일이다. 

농업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토양의 황폐화'와 '임금하락'이 문제다. 

이는 역설적으로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3. 멜서스와 이해할수 없는 신세계

 

인구가 감소해야만 1인당 소득이 늘어나는 현상을 '멜서스 함정'이라 한다.

간단히 기술적 진보가 매우 더딘 세상을 의미한다.

 

노동력이 비싸고 자본이  곳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는게 이익인데, 영국이 이에 해당되었다. 

일본과 중국은 '인구과잉' 상황이었기에 굳이 값비싼 기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인력을 대체할 이유가 없었던 반면, 영국은 정반대 상황이었다.

 

그럼  유럽은 동아시아에 비해 인구압이 낮았을까?

유럽에서 주로 재배되던 작물인 밀의 생산성이 동양의 쌀에 비해 훨씬 낮았다. 

반면 벼농사는 몇십년 동안 같은 땅에서 계속 지을수 있는 것은 물론, 2모작, 3모작까지 가능하다.

 

남북전쟁 직전인 1860 노예수가 압도적인던 남부가 북부보다 생산성이 무려 35% 높았다. 

남부가 노예 노동에 힘입어 노동생산성 향상을 달성한 반면, 북부에서는 다른 형태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총을 만들어내는 위업을 달성했다.

 

1853 크림전쟁에서 신형 라이플 소총을 영국해군에게 보급한 것이 승리의 요인이 되었다. 

신형 소총을 제조한 곳이 바로 미국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미합중국 조병창과 코네티컷  유역의 민간 기업들이었다.

 

북부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수송체계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4. 대공황 , 대공황!
 

금융시장만큼 '규모의 경제' 작동하는 곳이 없다보니 예금이 풍부한 곳은 돈이 넘쳐흐르고, 예금이 부족한 나라는 한없이 돈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런던 금융시장이 가진 장점은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금본위제도(Gold Standard)'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여 파운드에 대한 신뢰가 대단히 높아져, 이른바 '기축통화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모든 참전국은 전쟁 동안 꾸준히 전쟁 채권을 발행하면서, 국채를 전혀 사본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국채 구입이야말로 애국적 행위라고 설득했다. 

반면 연합국은 런던이나 뉴욕같은 금융 시장이 형성된 곳에서 채권을 발행했고, 동맹국은 중앙은행에서 돈을 빌릴  밖에 없었다.

 

ㅡ 1923 독일의 산업생산은 1914 수준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졌고 경제위기가 낳은 사회 심리적 트라우마가 끔찍했다. 돈의 가치가 떨어져 돈으로  모든 형태의 부와 고정수입이 무가치하게 여겨지게  것이다.

결국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는 대다수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국가와 기업의 배를 불렸고, 이후 히틀러를 비롯한 전체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영국은 1차대전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독일이 하이퍼 인플레를 겪으며 망가졌기에 전쟁 배상금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 

이때 영국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 미국이었다. 

 연준은 영국 경상수지를 개선시킬 목적으로 금리인하  통화공급 확대와 같은 경기부양을 펼쳤다.

 

대공황의 주된 원인으로 '금본위제'와 '청산주의'적 정부의 태도를 지목되지만 '은행 위기에 대한 잘못된 대응'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때 '예금보험' 제도를 도입해 중앙은행이 긴급자금을 은행에게 빌려주면 된다.

뱅크런의 위험에 처한 은행자산을 담보로 고금리로 대출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연준은 은행의 파산을 방치했다. 명분은 '금본위제'였다. 

은행을 돕기위해 긴급 대출을 해주어 금리가 떨어지면, 외국인이 금을 인출할  있다는 우려가 부각되었던 것이다.

 

시장에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도 위기에 빠져든 금융기관이 살아날지 불확실한 판에, 금리를 인상하는  긴축정책을 펼치자, 미국 경제는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었다.

 

독일은 1923 하이퍼 인플레, 그리고  이후에 발생한 대공황으로 독일경제가 완전히 망가졌는데 어떻게 강력한 군대를 육성할  있었을까?

답은 '금본위제 포기' 있다. 이로 인해 독일  신용여건이 빠르게 개선되었고, 1929 1 대전 참전국들이 독일이 능력내에서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합의해준  또한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히틀러 집권 이전에 이뤄졌던 금리인하와 재정지출 확대 효과가 히틀러 집권 당시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금리인하  적극적인 재정확대가 시행되면 악순환  탈출하는 것은 물론 강력한 경제성장을 달성할  있다는 하나의 실증사례가  셈이다.


5.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후의 세상

 

ㅡ 1944 미국의 주장대로 주요국 정부는 변동환율제도가 아닌, 고정환율제도로 회귀하리고 결정하고 금본위제도 해체의 교훈을 되살려 국제통화기금(IMF) 만들었다.

 

ㅡ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 미국은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협조하는 국가에게 미국 시장을 개방하는 한편, 세계 교육 통행로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미국이 이런 선택을  이유는 2가지다.

첫째는 독일과 일본을 섬멸한 소련의 기갑부대 위협으로 인해 미국은 독일과 일본 같은 2차대전 당시의 적을 우방국으로 키우기 결심했고, 마셜플랜 등을 통해 경제회복에 필요한 자금을 지급함으로써 소련의 위협에 대한 맞서줄 방파제를 건설하려  것이다.

 

두번째는 자국의 이득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고속도로망의 건설과 석유 수송로의 안전은 경제 성장의 생명선이라   있다.

 

 

 환상적인 시스템에는 1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문제였다. 

무엇보다 미국 달러의 가치가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고평가된 탓이 컸다.

 

닉슨 대통령이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함으로써 새로운 금융질서가 수립되었다.

이를 '닉슨쇼크' 부르며, 금에 대한 교환 의무가 없는 화폐를 '불태환 화폐' 지칭한다.


6. 일본 경제는 어떻게 무너졌나?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도, 주택이 넘쳐나면 부동산시장의 수급 균형은 깨질  밖에 없다.

 

파산위기에 처한 수백만명의 주택소유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너도나도 집을 내놓는다면, 또는 채권자들에게 담보 잡힌 집을 매각하기 위해 내놓는다면, 대규모 '집값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소비자들이 빚을 갚기위해 소비를 줄인다면, 경기는 침체되고 일자리가 사라지며 이는 다시 소비자들의 부채 부담을 무겁게 만들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경제 전체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늪에 빠질 것이다.


7. 1997 우리나라는 ?

 

어떤 나라가 일정 수준의 소득을 넘어서지 못하고, 성장 탄력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경제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이야기한다.

 

경제성장의 초기에 신흥국은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 그리고 값싼 땅값을 이용해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손쉽게 유치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는 순간 고용이 늘어나며 경제 전체에 활기가 돈다. 

그러나 10~20년에 걸쳐 가파른 경제성장을 기록하다 보면, 임금과 토지가격이 상승하고 외국인의 투자자금의 유입이 중단되거나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개발 국가의 산업화를 가로막는 요인 3가지

첫째, 개발도상국의 낮은 임금, 산업혁명을 일으킬 동기  자본이 존재할  없다.

둘째, 지주들은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으로 충분히 많은 돈을   있기에 굳이 생산량을 늘리는 '자본투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셋쨰, 생존수준의 소득과 지주의 고리대금업이 결합되면 사회 전반의 교육수준이 떨어지게 된다.

 

1944년 일제 치하 15세 이상 인구중 무학력자의 비중이 남자 80%, 여자 94%에 달했는데 이는 일제가 조선인을 교육시키는데 열의를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녀를 교육시킬 여력을 지닌 사람이 지주뿐이었기 때문이다.

 

 군정은 한국의 토지분배에  공을 세웠다. 

토지개혁 이후 농업생산성이 극적으로 개선된 이유는 동기유발에 있다. 

또한 이는  농가 소득 증가로 연결되었고, 농업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농촌의 여유노동력이 도시로 이동할  있게 되었다.

 

학습곡선(Learning Curve)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단위 제품당 생산 단가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생산성이란 시간이 쌓이고 팀웍이 맞으면서 늘어난다. 그러기에 생산량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수출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은 

먼저 매혹적인 '저금리' 제시하여 기업들의 제조업 육성에 기여하고, 수출실적이 나오지 않고 원하는 기준에 미달한다고 판단될때 성공적인 기업에 강제로 합병시키거나 국영 금융시스템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파산이라는 궁극적인 제재를 가하며 철퇴도 사용하였다.

 

ㅡ 1960년대 베트남전쟁과 물류혁명, 1970년대 중화학공업 합리화조치

 

해상운송이 철도보다 2 이상 걸리는데 해운이 훨씬  이유는 무엇일까?
1960
년대 미군이 베트남 전쟁 초기 운송과정의 근본적인 개편을 건의하는, 화물의 포장방식 통일, 

 컨테이너 운송시스템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전쟁 경기에 운송 비용의 극적인 절감까지 더해지면서 일본, 우리나라, 타이완은 기적같은 성장의 기회를 잡을  있었다.

 

어느날 나라의 주력수출제품(ex 반도체) 가격이 갑자기 폭락해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제일먼저 고용과 국내총생산이 감소할 것이며, 수출 감소 영향으로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충격에 대응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며  나라에 투자했던 돈들이 해외로 대거 유출될 것이다.

경상수지  자본수지가 함께 악화되니 외환 공급이 크게 줄어들 것이며,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의 환율은 상승할 것이다(자국 통화가치 하락)

 

결국 1997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벌어진 것은 금융시장을 개방하면서 고정환율제도 유지했던 당국의 실수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제조업의 경쟁력이 충분히 강화된 다음에도 과연 저금리 대출이 필요할까?

특히 능력없는 기업에게 저금리로 대출해주다가 잘못되면 1997 때처럼  위기에 처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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