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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69. 테크놀로지와 전쟁의 역사>

by leeesssong 2020. 6. 17.

한줄평 - 관리능력과 조직창출이라는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더 와닿음


ㅇ서론

 

인류는 오래전부터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왔으며 전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으로 언급되는 생존과 삶의 재상산과 관련한 것이었다. 뗀석기가 최초의 도구이자 모습이었다.

 

불의 사용은 육식을 하게 만들고, 단백질의 섭취가 증가하게 됨으로써 체격이나 뇌의 크기가 증가하게 되었다.

 

식량의 확보 재생산의 기회의 확보를 위한 상호 연관된 경쟁에서 비롯한다.

지위에 대한 욕구, 타인에 대한 지배력의 확보, 명예, 위신 또는 사치품에 대한 열망

 

군사기술은 군사적 필요와 무관하게 다른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원용 또는 변용된 것이다.

다시말해 전쟁의 필요성 때문에 이미 마련되어 있던 기술이 활용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필요성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떤 새로운 군사 기술 또는 무기개발을 자극시키는 각종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적대관계의 맥락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힘이 직접 적용되는 이러한 테크놀로지를 크레벨드 교수는 도구(Tool)이라고 부른다.

어떤 일을 쉽게 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를 기계라고 부를 있다.


ㅇ본론

 

1. 고대의 전쟁

 

사회적 존재의 통상적인 부분으로 되어 모든 범위의 사회정치경제심리적 수단과 테크놀로지가 전쟁에 봉사하게 되었다. 전쟁의 대부분은 경작지의 경계와 농업용 수자원을 둘러싸고 도시국가들 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인류가 첫번째 사용한 금속은 구리였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통해 만들어진 청동은 구리에 비해 단단했다.

 

히타이트인들은 반복적인 가열과 담금질을 통해 단단하 철을 제작하는 제련법을 개발.

유럽의 경우 18세기까지 청동제 무기가 제조되었다. 철기시대의 도래가 결과한 무기의 대량 보급으로 인해 여러곳에서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는 일이 가능했다.

 

그리스식 밀집대형 전투는 인간의 본능인 공포심의 극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방식은 전술이론뿐 아니라 정치이론의 수준에서 설명될 필요가 있다.


2. 서양 중세와 군사 기술의 발전

 

창과 랜스, 너무 깊이 파고들 경우 다시 뽑는게 아려으므로 일정한 깊이 이상으로 꼽히지 않도록 하는 원판의 베플(baffle) 끝부분에 설치

 

선박이 목재로 만들어졌기때문에 불화살을 많이 이용했고, 뱃머리에 충각기를 설치하여 선박에 돌진하는 방법도 자주 있었다. 또한 적선에 승선하여 육상전과 같은 방식으로의 백병전

 

악티움해전 - 갤리선 / 1571 레판토 해전 - 갤리선


3. 화기혁명과 근대의 시작

 

아쿼버스는 카운터마치와 일제사격법의 채택을 통해 재장전 시간과 정확도의 결함을 극복했다.

머스킷은 구조적으로 아쿼버스와 동일하지만, 크고 탄환도 무거웠다.

소총의 구분은 희미해지고 머스킷은 모든 소총을 대표하는 단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최소한 3개의 돛을 장치한 전장범선(카락, 카라벨)

특히 카라벨선은 삼각돛을 기본으로 하는데 물에 잠기는 흘수가 작아 빠른 속력을 있다.


4. 절대주의 체제, 무력 운영의 관료제화

 

ㅡ중세말과 근대의 시작점 사이의 교차시기인 1600년대 전후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 스페인 사이의 대결, 단순히 양국 사이의 대립자체로 그치지 않고 종교개혁과 관련된 종교전쟁의 형식을 취하면서 대단히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ㅡ내부적 제도의 정비와 경제 재정 능력의 확충 작업은 국가건설(state-making) 작업 또는 중상주의(mercantilism)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마우리츠에 의해 훈련된 이러한 조직은 기본적으로 기율, 정확성, 질서 등을 바탕으로 예정된 원래의 기능을 수행할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바로 근대적 관료제 조직의 핵심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군사적 혁신은 무기의 기술적 혁신 뿐 아니라 군사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어보이는 사회 생활의 다른 측면에서 기술상의 변화에 의존하게 되었고, 또한 군사적 혁신이 대규모 병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할 필요성이 새로운 관리의 능력이나 조직의 창출을 자극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매치록 -> 플린트록

창병으로만 구성되던 전투대형은 정방형의 밀집대형으로

마우리츠는 10 횡대 / 구스타프 6 횡대 / 프리드리히 3열은 사실상 완전한 선형대형

 

새로운 화기 제조법의 핵심은 총열 천공법, 미리 주물로 제작된 포신에 총열을 내는 방법

동일하게 제작되어 성능, 특히 탄도가 일정하여 사격을 정확하게 있었다.

 

갈레온선은 화물창고로 활용하던 하갑판에 대포를 설치했다.

함정 모두가 1열로 도열하여 나란히 배치된 대포를 적함의 뱃전을 향하도록 단종진이 발전했고, 전열에 가담하는 함정들을 전열함(Ship-of-the Line)이라 불렀다.

 

영국의 강력한 해군은 견고한 식민지와 안정된 무역질서의 유지를 위해 불가결한 수단이었다.

해군의 유지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을 위해서는 식민지와 안정된 무역질서를 유지할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장해야 했다. 강력한 해군, 안정된 식민지 그리고 무역질서의 삼박자


5. 산업혁명과 산업화

ㅡ차상위 계층에 무장할 특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들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것과 동일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의 혁명정부는 소집령을 내면서 애국심과 혁명적 정치신념에 입각한 정치적 호소가 전대미문의 대규모 국민군대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를 '절대전쟁'이라는 개념으로 적었다.

 

후장식 탄환 장전방식이 채택된 것은 각기 1840~50년대이다.

 

몰트케가 철도를 실전에 활용한 것은 1866년의 오스트리아 전쟁과 1870 프프전쟁 때였다.

 

1866 전쟁에서 5주가 소요되었던 동원이 1870 전쟁에서 단지 18일만에 완료되었다.

프랑스군의 동원은 전면적 혼란에 빠졌다. 이는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라 계획을 실천에 옮길 정확한 행정적 통제의 부재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라의 군사력의 중심은 산업력과 우월한 관리능력이 차지하게 되었다.

 

총동원, 대전략, 총력전

 

미니에 소총, 후장식 샤스포 소총, 드라이제 니들소총, 마우저 소총

 

참호전, 제복, 밀집정도, 화기의 대량방식, 엔필드, 콜트

 

목선에서 철선, 범선에서 증기선, 작열탄의 채택

 

속도, 화력 그리고 철갑면에서 상당한 개량이 이루어졌지만 동력원으로서 바람을 포기하여 무한정한 장거리 항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해외 식민지 확장노력은 해군 기지의 확보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드레드노트의 우수성은 단순히 함포의 숫자보다는 중앙 집중화된 사격통제 장비와 신기술의 조준장치에 있었다.


6. 양차대전

진리만을 탐구한다는 상아탑의 자아상을 고집하던 대학이나 연구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쟁 노력에 깊이 발을 담그게 되었다.

 

1911 리비아를 침공한 이탈리아군에 의해 비행기의 정찰 폭탄 투하가 최초로 사용되었다.

 

두랄루민, 기압을 일정하게 해주는 여압, 전신기술, 무선기술, 가압장치, 레이더, 레이더 송수신 장치에 장착한 진공관에 넣는 반도체

 

B-29 명성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확고해졌다

 

전략폭격의 핵심은 전방과 후방의 구분,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도 사라지게 되었다.


7. 냉전체제와 첨단기술 경쟁

1970 핵확산금지조약(Treaty of Nuclear Nonproliferation)

1972 전략무기제한회담(Strategic Arms Limitation, SALT)

1979 전략무기제한회담(Strategic Arms Limitation, SAL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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