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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39. 21세기 한국과 육군력>

by leeesssong 2020. 4. 13.

한줄평 - 전쟁의 미래, 미래의 전쟁 그리고 육군의 미래, 미래의 육군


ㅇ서문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필요한 군사력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휘관들은 항상 지난번 전쟁을 싸운다(Generals always fight the last war)" 라는 경구가 말해주듯이

많은 국가와 군사조직이 그러한 적응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한국은 어떤가?

 

ㅡ "바보는 자신의 실수에서 배우지만, 현명한 사람은 다른사람의 실수에서 배운다" 비스마르크의 명언처럼

다른국가의 경험, 특히 전쟁터에서 피를 흘려가면서 획득한 교훈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학습해야 한다.

"훈련에서 흘린 한방울은 전쟁에서의 한방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국가의 전투경험과 과정에서의 희생은

우리의 피를 아낄 있는 좋은 기회다.


ㅇ본문

 

1 21세기 전쟁과 육군력 : 미국과 이스라엘의 경험을 중심으로

 

1 라인강에서 티그리스 강까지, 그리고 이를 넘어 : 육군의 진화와 학습, 1990~2015

 

한국이 북한을 억지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상당 부분 성공했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실제 전쟁에서 군사력을 사용했다.

경험, 군사기술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15~25 동안 자신의 육군력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ㅡ 1973~1989

육군은 세가지 측면에서 도약을 성공했다.

첫번째는 징병제를 포기하고 모든 병력을 모병을 통해 지원병으로 대체한 것이다.

두번째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전반적인 전략 균형의 변화이다. 핵우산, 확장억지, 핵균형

세번째는 통상전투에서 나타난 기술의 진화이다. 새로운 정밀타격체계의 등장

 

ㅡ 1990~2000

걸프전 당시 육군의 중무장 부대는 이동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중동으로 2 군단을 이동시키는데 수주일이 걸렸고, 기간에 이라크의 공격을 막아낼 있는 부대는 82공수사단이 유일했다. 병참 능력이 제한되면서 부대의 이동성 또한 제한되었다.

이후 10년간 육군은 전략적 이동성과 민첩성을 개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ㅡ 2000~2007

신세키의 비전은 3가지 유형적 요소로 이뤄졌다.

차륜형 스트라이커 장갑, FCS(Future Combat Systems), 부대의 모듈화

 

ㅡ 2015 이후의 육군

미래의 세계에서 육군은 2가지 가능성을 가진다.

첫째는 화력 중심의 제한전을 포기하고 아시아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다.

해공군 중심의 공해전(AirSea Battle) 2015 초반 육군력을 포함하는 개념인 JAM-GC(Joint Concept for Access and Maneuver in the Global Commons) 정립되었다.

"반접근(Anti-Access, A2) 도전을 극복하는데 지상군의 역할이 있으며, 이것이 그들이 틈새를 열기 원했던 이유들 하나다."

 

둘째는 육군의 역할을 유럽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육군의 핵심 문제는 유럽전쟁의 가능성과 비유럽 전쟁의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작전적 차원과 전술적 차원에서 센서를 통한 상황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프간 같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에서도 센서를 통한 상황 인식은 불가능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정찰과 재래식 접적 기동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줄이고 좀더 합리적인 기대를 해야한다.

 

개별 전투원의 기량도 중요하다.

기술이 작동하지 않은 여러 사례에서 상대를 뛰어넘는 기량을 바탕으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는 포트어윈의 훈련센터와 밖의 지역에서 다년간 실제상황처럼 이뤄진 훈련 덕분에 가능했다.


2 다음 한국전쟁: 이스라엘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스라엘이 1991, 2003 두차례의 이라크 전쟁에서 찾은 교훈은 전장에서의 승리가 결국 상대방의 영토를 점령함으로써 이뤄진다는 이다. 따라서 지상군의 전투준비태세를 희생시키면서 공군의 역량을 확충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이라 있다.

 

ㅡ 3 중동전쟁에서 거둔 승리에 대한 기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무적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했으며,

이스라엘군을 과대평가하고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을 과소평가했다.

4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전투준비 완료 정보를 입수한 후에도 이스라엘은

총동원령을 내리지 않았다. 경제적 부담과 설사 공격한다해도 충분히 방어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쟁 발발 24시간 만에 이스라엘 공군의 모든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공군은 공군력에서의 우위를 활용하지 못했고, 지상군을 돕지도 못했다.

10 8일이 끝날 무렵 이스라엘군은 패배했고 그들의 사기는 암울했다.

14 이집트의 공격에 이스라엘은 반격했고 24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전쟁이 끝났을때, 이스라엘군은 카이로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수에즈 운하 서쪽 제방에 위치해있었고, 이집트 3 4 5천명을 포위하고 있었다.

 

ㅡ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반격에서, 한국은 이스라엘의 행보를 따라가선 안된다.

북한 영토 깊숙히 진격한다면 핵무기 사용이라는 대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

 

한국군은 북한군을 휴전선 북쪽으로 밀어낸 뒤에 휴전선을 넘지 않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휴전선을 넘어 진격한다면, 한국군의 지상기동은 휴전선 부근으로 제한되어야만 한다.

이스라엘의 사례처럼, 최악의 사태에는 북한 역시 그들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가할 것이며,

이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에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요청하게 것이다.

 

북한은 2006년 레바논 전쟁이 발발하기 전 지하 군사기지와 터널망 구축에 필요한 지원을 헤즈볼라에 제공했다.

더욱이 북한 교관들은 헤즈볼라 전사들에게 지하 게릴라 전쟁에 대비한 훈련을 시켰다.

 

ㅡ 2006 레바논 전쟁이 종결되었지만, 이스라엘의 원거리 폭격과 포격으로는 헤즈볼라의 '자연보호구역' 지하기반,

단거리 로켓 능력을 제거할 없었다. 헤즈볼라 지도부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지되었고, 전쟁 마지막날까지

헤즈볼라의 단거리 로켓은 이스라엘내 목표물을 타격했다.

 

아이언돔이 단거리 로켓과 박격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놓고는 전문가 사이에 반론이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북한군은 하마스 또는 헤즈볼라와는 비교할 없을 정도로 진보된 미사일, 로켓, 박격포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미사일과 로켓 요격체계에 의존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따라서 대피시설과 같은 한국 안전 조치의 유지 확대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이스라엘이 공군력 강화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육군의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1973 전쟁에서 패배의 위기를 경험하고, 2006년에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21세기 한국과 미국의 군사적 경험: 차이와 상호 교훈을 중심으로

 

억지억제와 위기관리,

전면전쟁에 대비한 한국의 군사력이 안정화 대반란작전에 집중했던 미국의 군사력과 상호 보완적인가?

 

현재 장교단의 다수는 이라크와 아프간을 경험했고, 안정화 대반란작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지난 15 동안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던 '주민 보호' 한반도 전면전 상황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있다.

 

안정화 대반란작전은 기계화 화력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며, 따라서 이에 대비한 부대는 민간인과의 접촉에

대한 훈련에 집중한다. 그러므로 안정화 대반란작전에 대비한 군사력을 전면전쟁에서 사용하려면 화력과 기동력을 상당 수준 보강해야 한다.

 

전면전쟁과 안정화 대반란작전은 소요되는 군사력의 형태 측면에서 상반되며, 따라서 각각의 군사행동은 개별적으로 필요한 특성을 가진 다른 형태의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첫째 한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전면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위기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위기를 안정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미국의 안정화 대반란작전의 경험을 연구해야 한다.

지난 15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미국은 군사적인 차원에서 안정화 대반란작전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동맹국 미국의 군사작전을 이해해야 한다.


2 21세기 한반도 전쟁과 육군력 : 한국 육군의 변화와 대비 방향

4 한국군의 군사력 증강과정: 200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한국군은 2000년대 이후 국방개혁 2020, 국방개혁 기본계획 2030 다양한 군사력 개선 노력을 지속해왔다.

 

ㅡ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200만명의 향토예비군을 조직, M16 소총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

중반 이후 한국군의 군사비가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5 달러 정도의 소규모 증액으로 북한의

군사증강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ㅡ 1970년대, 1974 소위 '율곡사업'이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군 무기 장비의 현대화 사업을 시작했다.

1977 북한의 군사비를 추월하기 시작했고, 당시 한국이 강력한 군비증강에 나선것은 미국이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와 닉슨 카터 행정부의 안보공약 약화는

자주국방을 향한 한국의 군사력 증강 노력으로 이어졌다.

 

ㅡ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의 위협 전면적 도발에 대한 억지와 더불어 핵무기 프로그램과 비대칭전력에

의한 제한적 도발에 대한 억지에 관해 2000년대 이후 군사력 개선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의 국방개혁 논의는 군구조, 군사혁신 새로운 첨단기술 적용이라는 관점에 집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재래식 형태의 전면전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고, 전쟁의 미래에 기초한 정보기술 집약형 첨단군 형태의

구조개편도 필요하다.

기존의 재래식 '전투형 군대' 육성 병력사용 방식 뿐만 아니라 대민지원 사회 안정화를 위한 훈련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것이다. 또한 한국의 군사력 증강이 '전쟁의 미래' 관점에서 첨단무기를 구매하거나 군사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미래의 전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것이다.

 

최근 브루스 베넷 등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 붕괴시 낙관적으로 추산하더라도 대체로 26~40만 정도의 지상군 병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제거 및 관리를 포함할 경우 북한 붕괴시 60~80만명의 지상군 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5 미래의 안보환경과 21세기 한국의 육군력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질서의 불안정 불확실성의 증대는 향후 수십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런 도전에 대응해 미래를 준비하고 국방력을 확충할 재원과 인력의 상황 역시 계속 악화될 전망이다.

각군은 이러한 이중고 속에 주어진 인력과 재원을 가지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복합적인 도전에 동시에 대비할 것을

요구받게 것이며, 이를 위한 미래의 비전과 계획을 수립해 제시할 것을 요청받게 것이다.

 

ㅡ '전쟁 수행방식 자체의 변화' 의미하는 '전쟁의 미래'

'미래 공간에서 발생할 전쟁의 양상' 의미하는 '미래의 전쟁'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군사혁신은 기술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교리나 조직, 전략을 통한 혁신도 가능하다

 

대량살상무기 공격에 대비한 부대방호나 피격시 회복을 위한 준비도 필요한데,

이는 구성상 육군의 역할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사시 북한지역 내 WMD 제거 작전이 필요할 때에 상당한 지상 병력의 투입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해군과 공군이 현재보다 더욱 중요해질 것 또한 분명하다.


6 전장무인화와 대한민국 육군

 

기존의 무기체계들은 전투 능력 이외에도 생존성과 내구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탑승자인 인간의 체력 생리현상, 생존성, 방호력 등을 고려해야하므로 무거워지고 개발 단가도 상승하게 된다.

 

무인 병기는 생환을 전제할 필요가 없고 보다 극단적인 기동과 장시간 운용이 가능하다.

또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리상의 요인에서 자유로울 있으며 인간이 탑승 혹은 조작하지 않기 때문에 적은 수의 병력을 가지고도 전투력을 유지, 강화할 있다.

 

전장무인화에서 상정하는 새로운 싸움 방식은 이른바 '벌떼전술(Swarming)'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적고 양적으로 많으며(Small and many) 분산되고 네트워크화된 병기 부대를 통한 작전 운용.

둘째, 모든 종류의 전력에 대한 혼합 결합적 운용(Mixing and Matchign)

셋째, 근접과 비근접(Close and Stand off) 모두 포함하는 전투 능력 구비

넷째, 통합된 정찰 감시 체계 구비

다섯째, 목표는 전력 화력의 지속적 동원과 적에 대한 충격 부여

 

랜드 연구소는 '자율성이 확대된 무인 시스템 설계' 통해 완전 자동화에 관한 급진적인 방안을 소개했는데,

구글이나 상용 자동차 회사의 오픈 소스를 활용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군 국방부는 무인 병기를 기존의 유인병기를 지원하는 보조전력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인 전투기 X-47B 보다 높은 생존성과 범용성, 그리고 유인 병기에 상응하는 다목적성을 요구했다.

의회는 X-47B 사람만 탑승하지 않을뿐 랩터와 같은 유인 전투기와 다를바 없는 전투기로 인식한 것이다.

 

무인전력이 독자적인 전력으로서 미래의 전쟁 양상을 바꿔놓으려면 새로운 전술, 특히 벌떼전술의 도입이 필요하다.

벌떼전술이 요구하는 무기들은 기존 무기와는 다르다. 일회성 소모품으로서 가능할 수 있어야 벌떼전술이 가능하다.

 

무인기에 대한 해공군의 소극적인 태도는 육군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항시 주요정찰과 근접지원을 해공군에

의존해야 했던 육군은 전장무인화 추진을 통해 자체적인 정찰 근접지원전력을 확보했다.

 

대한민국 육군에 전장무인화가 필요한 이유

첫째는 병력부족이고 둘째는 북한의 대규모 재래식 전력 때문이다.

셋째,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위기관리를 방안으로서 전장무인화의 필요성, 희생을 두려워해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할 없을 있기에.

넷째, 독자적인 대북감시 능력 배양.

 

지원, 병참, 공병 장비들의 무인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무인 수송체계에 반드시 새로운 무인 수송로봇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존 수송차량에 자동운전 장비만 설치하면 된다.

 

넘쳐나는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정치적 제약요인, 이것이 전장 무인화 추진에서 극복해야할

주요한 문제다. 또한 요구성능을 높여 제작단가를 상승시킨다거나, 예산 배분의 문제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혁신에 대한 내부적 저항 혹은 소극적 태도를 없애야 한다.

 

미국이 전장무인화 달성시기를 2030년대로 계획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벌떼전술로 대표되는 완성된 형태의 전장무인화 혁신은 10 이상 기다려야 가시화 것으로 보인다.

공군의 유인 전투기 사업에 대한 집착과 전장무인화에 대한 거부감은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연상시킨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책과 정치에 있다.


ㅇ결론

 

대반란전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기술변화에 따른 한국 육군의 변화 발전가능성을 강조

 

문민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민간 부문의 대안 제시가 필요하며,

이러한 민간 부문의 대안은 군의 견해와는 독립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한 예로

만슈타인은 히틀러와 충돌뒤 남부집단군 사령관에서 물러났다. 그는 1944 재산과 퇴직금으로 동부 프로이센 지역( 폴란드 중부) 부동산을 구입했다. 하지만 소련군의 진격으로 모든 재산을 상실했고, 1945 피난민으로 소개되었다. '전쟁의 천재' 라는 찬사를 받기도한 만슈타인이지만 소련군의 진격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파산했다.

 

혁명적 군사혁신(RMA) VS 제병협동?

군사혁신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지상전투의 기본 원칙은 변한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라크군이 너무나도 무능했기에 공군의 군사적 성공을 전쟁에서의 기술혁신이라 없다고 주장하지만

정밀타격능력, ISR 정보감시정찰 능력 등이 지상전투의 성격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제병협동 능력의 필요성이 군사혁신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으로서는 비밀작전 능력이 중요하다.

정치지도자들에게 전면전이나 평화라는 단 두가지 선택보다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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