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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32.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by leeesssong 2020. 4. 2.

한줄평 - 일본 군사사의 시초(?)이자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知彼知己 白戰不殆​


서문

 

요시다 쇼인(1830~1859)

 

일본의 많은 인물들이 '요시다 쇼인'이라는 스승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많은이들이 모른다.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라는 정한론 집대성한 인물 정도만 알고,

'야스쿠니 신사' 원래 요시다 쇼인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본문

 

오다 노부나가(1534~1582) ->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 ->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이어지며 '에도막부' 세워진다. 뜻은 '도쿄에 세워진 정부'이고

에도시대에는 중앙정부인 '에도막부' 지방정부인 '' 공존하는 체제를 '막번체제'라고 부른다.

 

에도막부는 17~19세기까지 200 넘게 일본을 평화롭게 이끌었지만,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지배계층인 사무라이들이 빈곤에 시달리며,

계속된 권력세습으로 인해 권력층이 부패하는 다양한 폐단으로 인해 사회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ㅡ 1853 미구 페리 제독의 함대가 도쿄 앞바다에 들어와 개항을 강요한 것은 대전환의 시작이었다.

 

천황의 권위를 활용한 세력이 강력하게 추진한 개혁개방정책(메이지 유신) 성공하면서

일본은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1. 요시다 쇼인의 사상

가. 존왕 : 천황을 만들자, 일본은 천황의 나라다. 에도막부의 사유물이 아니다.

나. 양이 : 서구세력을 배척하자, 서양을 배워 서양을 이기자,

조선과 만주 등에서 서양세력에게 빼앗긴 이익을 채우며 힘을 길러야 한다.

다. 주변국가 정복 / 정한론 : "조선이 일본에 공납을 바치도록 하고,

북쪽으로는 만주, 남쪽으로는 타이완, 필리핀을 손에 넣어 일본의 진취적인 기상을 보여줘야 한다."

. 다케시마 개척론 : "조선, 만주에 진출할때 다케시마(당시 울릉도 포함) 첫번째 발판이다.

. 비이장목 : "정보를 손에 쥐면 주도권이 생긴다."

그의 제자들은 해외곳곳에서 활동하며 모은 정보를 활용해 강대국으로 만드는데 힘썼다.


2. 요시다 쇼인이 쇼카손주쿠(쇼인의 강의실) 목표

가. 뜻을 세워라(立志, 입지)

나. 목숨도 던질 각오를 하고 지성(至誠, 지극한 정성)으로 실천하라


3. 요시다 쇼인의 제자

가. 이토 히로부미

한국인에게는 '민족의 원수', 일본인에게는 영웅으로 여겨짐, 좌우명 지성(至誠),

영국의 압도적인 국력을 보며 '존왕양이'에서 '적극적인 개국'으로 생각을 바꿈,

청나라와 시모노세키 조약,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 조선과 을사늑약을 강제로 성사

 

나. 야마가타 아리토모

육군 원수, 청일전쟁, 러일전쟁 지휘, 일본 국군주의의 화신, 외교정략론 발표,

"주권선(국경)뿐만 아니라 '이익선(한반도)' 확보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다. 아베 신조(정확히 제자는 아니지만..)

좌우명 - 지성(至誠), 스스로를 요시다 쇼인의 제자라고 말하고 증명함


ㅡ 서애 류성룡 선생은 임진왜란 7년을 돌아보며 <징비록> 편찬했다.

"미리 경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뜻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창고에 묵히게 되었다.

반면 외교사절로 조선을 찾은 일본의 관리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ㅡ 1945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

일본의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이 전쟁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철저히 분석하며 다음 시대를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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