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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59. 아이젠하워>

by leeesssong 2020. 5. 15.

한줄평 - Role Model


​ㅇ서론

 

ㅡ "I Like Ike! "

1952 미국을 사로잡은 아이젠하워 공화당 대선 후보의 슬로건이다.

 

그는 신임과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훌륭한 팀워크 정신을 육성하고,

성공에 이르는 실용적인 계산에서 전략적, 정치적 고려사항과 순수학 군사적 고려사항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최상의 용병술을 구사했다. 또한 인류에 커다란 공헌을 미국의 진정한 영웅이었고,

그의 리더십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다.


ㅇ본론

 

1. 타고난 리더

 

아이젠하워의 조상들은 훗날 아이젠하워가 파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독일출신이다.

 

창의성과 독립적 사고가 자리가 없는 웨스트포인트(육사)

그들은 군사 문제에 대한 '일반화된' 육사식의 해답을 원했고, 남북전쟁 시절의 대대나 연대의 질서속에

생도들을 가두려고 했다. 이와 같은 융통성 없는 경직된 구조에서는 창의성이나 독립적 사고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는 괜찮은 성적을 받을만큼 공부했지만, 미식축구에 재미를 느끼게 되자

자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그는 웨스트포인트에서 누릴 있는 경험을 즐겼다.

나라 곳곳에서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날 있었을뿐만 아니라,

세상을 있는 미래를 마음속에 그릴 있었다.

 

임종을 눈앞에 두고 누웠을때, 유일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리더십, 결정, 대통령의 업적도 아닌 웨스트포인트에서 보냈던 시간이었다.

웨스트포인트 교수들은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가 얻은 대부분의 지식은 우연히 또는 개인적인 관찰과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그가 경험한 중에서 스포츠만큼 팀워크와 리더십 개발을 강조하는 것은 없었다.

 

에게 군대는 다른 무엇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지, 평생의 꿈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관은 도전의 연속에 직면하면서, 특히 몇명의 멘토를 만나면서 바뀌었다.


2, 3, 4. 교육훈련장교, 유럽작전 전구 사령관, 연합군 총사령관

 

"나는 나의 직업을 위해 공부와 독서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공평함, 적절한 대우, 그리고 본보기를 통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스코너라는 군인은 아이젠하워의 경력을 한층 넓혀준, 가치를 따질 없는 소중한 멘토였다.

 

사령관은 2가지 사항,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국의 이익보다 연합국의 이익이 우선임 요구할 있어야 한다.

 

미 육군의 지휘참모대학은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

피곤하고 지쳐도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길 원했다.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의 천재성과 달변에 감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의 단점에도 주목했다.

맥아더가 너무 지나치게 주목받기를 원한다고 생각했고, 오만함도 발견했다.

또한 신문사는 군사전문기자가 되어준다면 3배의 급여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거절했다.

 

아이젠하워는 소령으로 진급한지 16 뒤에 중령으로 진급했다.

 

아이젠하워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위험한 시기에 조국을 위해 일할 있다는 기대였다.

 

아이젠하워는 육군의 규정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판단과 상식에 따라 병력을 지휘했다.

육군규정을 읽은적이 없고, 대신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적절한 평가를 통해 결정했음을

훗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아주 많은 우리 장교들이 기존의 국제 정세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하다."

 

그는 출신이 아닌 자질과 능력으로 평가했다.

 

아이젠하워는 군에서 언론의 가치를 깨달았고,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지지가 중요함을 이해했으며,

지지를 얻는 방법은 뉴스를 전파하는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홍보의 긍정적 가치를 인식했고 언론이 경력에 도움을 수도, 방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른 참모장교의 계획을 일축해버리는 사람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계획을 무시하려면 다른 대체 전략을 만들어내고 작전의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할 있어야 한다.

아이젠하워는 모든 아이디어를 고려하여 나은 계획으로 발전시키기를 원했다.

 

마셜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과감하게 말하는 사람들과 기꺼이 교류했다.

그는 다른 사안의 모든 측면을 확실히 얘기할 있는 사람들을 신뢰했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사람 한명으로 마셜을 꼽았다.

 

미육군 유럽작전 전구사령관으로 임명되고,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제국주의 영국과 공산독재주의 소련과 함께 일해야 했다.

 

ㅡ "아이크가 언론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는 홍보참모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고였다"

 

ㅡ "나는 외교관, 변호사, 기획자, 판매원, 매춘부, 거짓말쟁이, 협잡꾼, 배우, 인도주의자, 연설가

그리고 부수적으로… 군인이 되어야만 했다."

 

어떤 팀을 맡든 임무를 수행하는 팀으로 만들어내는 아이젠하워의 능력

 

전투훈련과 크로스컨트리 실시하며 준비태세를 갖추길 원했고,

"개인과 소규모 부대 훈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했다.

 

ㅡ "부하들은 조언하고 충고하고 도와주고 기도할 있지만, '우리가 있는가, 할수 없는가'

최선을 다해 결정해야 하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 뿐이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냉철한 머리와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고, 가치없는 동기나 하찮은 이유에

결코 동요되지 않으며, 관련된 기본적 요인을 밝혀내어 자신의 의무를 다하도록 애써야 것이오."

 

지휘관에게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그의 성향은 때때로 결실을 맺기도 했으나

이는 이곳과 유럽 전구에서 그랬듯이 혼란과 우유부단으로 이어졌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초월한 연합체를 구축했다.

그는 전투에서 분대와 중대를 이끌어본 경험이 전혀 없었으나,

다양한 국가의 부대를 승리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그는 도중에 머뭇거리기도 했으나,

상황에 적응하고 자신의 실수를 통해 배움으로써 능력이 향상된 지휘관이 되었다.

 

ㅡ 2주전 방문한 병원에서 패튼은 전투피로로 고통받고 있는 병사 2명을 보고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겁쟁이라 부르고, 구타를 하였다.

"패튼은 피로에 무관심하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육체의 요구에 무자비했음이 분명하다"

 

최고의 정치가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아들 제임스가

아이젠하워를 선택하셨냐고 물었을때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젠하워는 군인들 가운데 최고의 정치인이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있는 타고난 리더다.

자리에는 이러한 자질이 다른 어떤 자질보다 필요하다"

 

그의 배움터는 웨스트포인트가 아니라 폭스코너, 조지패튼, 더글라스 맥아더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한 직책과 15보병연대와 3군과 함께한 야전이었다.

 

처칠의 보좌관 맥밀런은 아이젠하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두가지 장점을 지녔다.

첫째, 그는 항상 잘듣고 핵심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둘째, 그는 절대적으로 공평했다."

통합된 연합군을 만들기 위해 예하 장교들과 함께 상상할 있는 모든 전술을 동원했다.


5. 미국 34 대통령

 

회의적인 언론사들의 계속된 문제 제기에 대답했다.

정치를 혐오하면서 경선 출마를 결심했는지 묻자, 만약 국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의무의 부름에 또다시 답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신뢰할 있는 후보자가 되기 위해 어떤 정치적 훈련을 했는지 묻자,

인생의 대부분을 가장 활발한 정치조직, 미국 육군보다 활발한 정치조직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대답했다.

 

아이젠하워가 군과 정치계에서 발휘했던 다섯가지 자질은 비즈니스, 과학, 교육을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도 리더십 교훈으로 받아들여 활용 할만하다.

 

첫째,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집중력

둘째, 팀워크

셋째, 공감능력

넷째, 언론에 정통하고 그것을 활용할 아는 능력

다섯째, 의무에 대한 헌신

 

다섯가질 외에도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만 하는 가장 이유는

"그의 정직함, 진실성 그리고 인류에 대한 존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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