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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Military/국방군사서적

<#21. 3층 서기실의 암호>

by leeesssong 2020. 3. 16.

한줄평 - '외교는 총성없는 전쟁이다.' 북한은 생각한거보다 더 전략적이고 여러모로 심각하다.


ㅇ본문

 

1. 김일성 시대

 

ㅡ1991, 소련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동북아 세력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김일성이 평생 고집해온 남북 유엔 동시가입 반대정책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김일선은 또한 북한이 먼저 유엔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게 되면서 '한반도 영구분단의 책임'까지 떠안았다.

 

그때까지 북한의 모든 교과서에는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두개 조선' 조작 책동을 반대한다고 나와 있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소련과 중국은 이제 믿을 없는 동맹국이었다.

 

피란민 행렬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김일성은 핵무기의 위력을 절감했다.

물리적, 군사적 위력이 아니라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위력에 대해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중국이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확신한 김일성은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먼저 남한에서의 전술 핵무기 철수였다. 두번째는 ' 불사용 선언' 이끌어 낸다는 것이었다.

1991 걸프전 승리로 핵확산 방지를 최대 외교안보 과제로 설정한 미국, 무렵 소련은 저절로 붕괴되고 있었다.

 

ㅡ2가지 전략을 설정하고 비밀리에 핵개발에 전력했다.

김정일은 남북회담을 이용해 미국의 압력을 이완시키는 전술을 썼다.

북한이 고립과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김없이 꺼내는 카드가 남북회담이었다.

 

북핵폐기의 최종단계는 결국 CVID 검증인데 북한 내부의 정치범 수용소와 김씨 가문만 사용하는 '특수지역'

수없이 가지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죽어도 CVID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김일성

"조선해방전쟁(6.25) 해보지 않았는가, 전쟁은 생각했던 것처럼 되지 않는다만일 우리가 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김정일

"우리가 전쟁에서 지면 지구를 깨버리겠습니다."

김일성

"내가 듣고 싶었던 답변이다. 우리가 지면 지구를 깨버려야 한다. 우리가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

 

ㅡ1993 제네바에서 북미 회담이 결렬된 이후,

언론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을 타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의 외과수술식 타격안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1994 김일성, 카터 회담이 성사되고 카터의 주선으로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됐지만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했다.


2. 김일성에서 김정일 시대로

 

북한에서는 지금도 간부평가시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망했을때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가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ㅡ'제네바 합의' 북한은 시간을 벌었다.

미국이 북한과 합의한 것은 북한의 개발을 조금만 지연시키면 북한 경제가 먼저 무너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홍수 피해 이후, 외국 대표단은 경악했다.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떠들던 북한의 농촌이 이렇게 낙후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북한이 세계에 선전하던 지상낙원의 민낯과 허구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제네바 합의 직후 진행된 국제사회의 식량원조는 북한과 서방 사이에 해빙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외교관들은 다만 얼마간의 식량이라도 본국에 들여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반면,

평양에서 오는 구입 대표단은 김씨 가문에 진상할 품목에만 관심을 쏟았다.

겉으로는 인민과 군인들의 생활을 걱정하는 체했지만 김정일은 자신의 일가가 먹고 사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간부들도 다를바 없었다.

 

"우리가 미사일 기술을 중동에 수출하게 되면 새로운 미사일 경쟁이 일어날 것이고,

이스라엘의 안전도 위협당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중동 국가들과 10 달러 선에서 협상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10억달러를 주면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지 않을것" 이라고 노골적으로 제안했다.

 

김정일은 북한이 이스라엘과 협상을 벌인다면 이스라엘이 반드시 미국과 정보교환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듯하다. 김정일은 미국에 북한의 미사일 기술 이전 가능성을 흘리면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같다.

 

북한의 경제난 극복을 위해 김정일에게 절실했던 것은 '미사일 팔기'보다는 남북정상회담이었다.

 

핵실험까지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북한으로서는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대화 제의 이용하면 년간은 힘든 고비를 넘길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되어 있다.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년 동안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부대 이전만 해결해주면 되는 문제였지만 북한은 그렇게 할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과 러시아는 아직도 한반도 종단철도 수송로 창설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1990년대초부터 위기에 몰렸던 북한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채택으로 10년도 안되는 사이에 다시 활력을 찾았다.

 

북한에서도 '신념' 아니라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

 

김정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의혹만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앞으로 인권문제를 가지고 조선을 공격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은 미국과 영국의 행보를 정밀 분석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끝내고 모든 전쟁 물자를 한반도로 몰고 온다면 북한은 끝장이었다.

미국은 이미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으로 규정한 상태였다.

관건은 미국의 한반도 전쟁계획에 대한 영국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영국이 북한 대사관 개설에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이것은 미국의 한반도 전쟁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북한도 미국에 배짱을 부릴 있었다.

 

ㅡ"조선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미국이 우리를 공격할 것인가?"

영국의 정세, 이라크전쟁 후의 악화된 여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미발견, 영국과 미국의 관계 등을 감안해 볼때

미국은 절대로 북한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아직도 한국 일각에서는 9.19 공동성명의 파탄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고 압박해 북한이 개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것이 북한의 개발이다.

 

당중앙 청사는 청와대이고, 3 서기실은 대통령 비서실에 가깝다고 있다.

3 서기실이나 김정은에게는 모든 정보와 권력이 모이게 된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안을 수립하는 기능이 없는 3 서기실이 막후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이유다.

 

북한이라는 체제에서는 언제나 당이 권력의 중심에 있다.

 

일부는 권력서열만으로 누가 2인자이고 3인자라고 평가한다.

이것은 중앙당의 역할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공허한 말잔치일 뿐이다.

 

조직지도부는 사회에 대한 장악과 통제, 고위층 간부들에 대한 인사, 검열, 처벌 권한을 가진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오늘까지 북한사회를 움직이는 2 축이다.

 

결국 북한을 움직이는 것은 중앙 조직지도부이고 조직지도부는 기관의 당위원회를 통해 전체 기관을 통제한다.

 

아래 1부상이 있고 부장 밑에 1부부장이 있다.

상이나 부장보다 권력서열은 낮지만 1부상과 1부부장은 김정일의 방침을 직접 집행하는 직책이다.

김정일과 얼마나 자주 대화하고 김정일이 얼마만큼의 힘을 주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북한의 권력이다.

 

사람들이 일단 버는 재미를 들이면 되돌릴 없다. 재미를 빼앗으려 하면 결사적으로 반항한다.

더구나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생존권이 달려 있는 문제였다.

정치적 통제는 그럭저럭 참아오던 북한 주민들이 생존권을 빼앗기자 목숨을 걸고 반발했다.

김정일은 그런 이치를 몰랐다.


3. 김정일에서 김정은 시대로

 

핵경제병진노선이란 경제개발과 함께 북한의 군사무력이 향후 비대칭 전력인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중심으로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정에 따라 북한의 모든 재원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된다.

 

김정은은 2012 집권하면서 군부대를 시찰하며 전쟁준비를 점검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했다.

장비는 낡고 노후했고, 기름은 빼돌려 먹어 장부와 어긋났고, 병사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경제가 돌아가지 않아 120만명의 병력을 유지할 돈과 장비가 없었다.

김정은은 재래식 무기에 의한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든 재력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야하는데 북한의 경제적 이권 대부분은 장성택이 쥐고 있었다.

김정은이 가차없이 처형한 이유중 하나를 장성택이 경제적 이권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ㅡ김정은은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백두혈통'임을 자처하며 후계자로서의 명분과 정통성을 선전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생모가 김정일의 유일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들 중의 한명이라는 사실까지 밝힐 수는 없었다.

 

김정은 또한 할아버지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장 없는 손자 신세가 것에 분통이 터졌다.

 

북한 주민들은 장성택의 비리와 추문을 통해 썩고 문드러진 백두혈통의 실상을 목격했다.

김씨 가문은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외피를 쓰고 결코 있어서는 안될 노예사회를 건설했다.

 

영국 국방성

"모든 국가가 군사훈련을 진행하지만 한미 연합훈련의 수준은 매우 높다.

군사강국이며 미국과 특수 관계에 있는 영국조차조 미군과 그런훈련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 리졸브' 훈련 참가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될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전쟁준비 물자가 소모된다.

존재만으로도 북한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4. 노예 해방을 위하여

 

한국에서는 북한 사회를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결부해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고찰하다 보니 대북 정책에서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로 갈라질 수밖에 없으며

대북정책 논쟁에서도 스펙트럼이 넓어질 밖에 없다.

 

북한의 사회주의 사회는 봉건사회로, 다시 노예사회로 퇴행했다.

 

수십만명에 달했던 북한의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역사는 깡그리 부정되었다.

오직 김일성의 혁명역사, 만경대 가문의 역사만이 조선의 역사라고 수정했다.

나라의 경제도 김씨 가문의 향락만을 위한 경제로 전락했다.

 

러시아에서 출생한 김정일은 갑자기 백두산에서 태어난 광명성으로 둔갑했다.

 

김정일은 스스로 정적을 제거하고 후계자 자리를 쟁취했다.

이것은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의 세습 이행과정이 '상향식'이다.

반면 김정은은 김일성이 구축한 북한 체제를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김정일과 같지만 방식이 '하향식'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자신의 노력 없이 김정일로부터 권력을 거저 넘겨 받았다는 뜻이다.

 

신격화는 커녕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이 부족한 김정은이 결국 선택할 밖에 없었던 것이

핵과 ICBM, 그리고 공포정치다.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 주민을 노예 사회에서 해방시키는 '노예해방 혁명'이다.

북한 주민에게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 통일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체제와 이념을 하나로 통일하고 민족 문화와 동질성을 융합하는 것은 이후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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